“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면 최전방에 저 어린 신병들과 함께 내가 던지는 목숨이야말로 최후의 카드가 아니겠는가.”

나폴레옹이 남긴 이 한마디 말 속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정신을 부하들에게 강요하기보다 지휘관이 전장의 최일선에서 몸소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휘관의 모습을 본 부하 장병들은 전투에서 후퇴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다.

19세기 프랑스 황제이자 장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근대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전술 구사와 과학적 전쟁 수행, 뛰어난 용병술과 포병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줄 아는 타고난 군사 전략가였다. 그는 유럽 대륙을 정복해 20년 이상 유럽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했으며 그 세력을 아시아·아프리카까지 확장했다. 비록 러시아 원정에서 날씨에 대한 무지와 무모한 원정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동서고금의 가장 위대한 군사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폴레옹은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했다. 그는 명령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호히 처벌했다. 러시아 원정 때 하루는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 와 벌판에서 그대로 야영을 하게 됐다. 그날 저녁 그는 밤새 보초 설 병사들을 직접 불러 모아 놓고 명령했다.

“오늘 밤 러시아 코사크 기병들이 기습 공격을 해 올지 모른다.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라. 만일 명령을 어긴 자는 내일 총살형에 처할 것이다.”

이윽고 밤은 깊어 가고 나폴레옹은 자정 무렵 숙소에서 나와 야간 순찰을 돌았다. 마지막 초소에 이르렀을 때 보초를 서던 병사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나폴레옹은 말없이 보초 임무를 수행했다. 날이 밝아 올 즈음 잠에서 깬 보초병은 자기 대신 보초 임무를 서고 있는 나폴레옹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릎을 꿇고 죽여달라고 했다. 한참 보초병을 바라보던 나폴레옹은 총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밖에 본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너를 용서해 주겠다.”

날이 밝으면서 러시아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자 한 병사가 적진으로 뛰어들어 용감히 싸웠다. 그 용기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 병사들도 사기가 충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나폴레옹은 용사의 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그날 새벽 자신이 대신 보초를 서 준 병사였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러시아 원정 당시 날씨가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자 나폴레옹은 적군이 포위망을 더 좁혀 오기 전에 파괴된 다리를 복구해 후퇴하려 했다. 그러나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들어 다리를 복구하라는 나폴레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추위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물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런데 유독 한 병사만이 모진 추위를 견디면서 부서진 교각을 어깨로 받친 채 버티고 있었다. 그가 끝까지 나오지 않고 버티고 있자 안쓰러워 다른 병사가 그를 끌어내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그 병사에게 다가갔을 때 이미 병사는 몸이 얼어 생명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는 오직 사령관의 입수 명령에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퇴수 명령이 없었기에 뼈를 깎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자기 본분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용사의 목숨을 건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얼음처럼 빳빳하게 굳어 버린 채 죽어 있는 동료를 바라본 다른 병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물속으로 다시 뛰어들어 힘을 합쳐 순식간에 다리를 고쳤다. 한 용사의 목숨을 건 임무 완수가 부대원 모두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원정 실패 후 프랑스가 받아야만 했던 패배의 충격을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나폴레옹 군대의 명성 뒤에는 지휘관의 솔선수범이 본보기가 되고 용사들의 희생적인 임무 수행이 있었다. 다시 말해 나폴레옹의 너그러운 관용에 감명받은 용사는 전장에서 그리고 강물 속에서 살신성인으로 보답했다.

많은 사람이 나폴레옹을 이야기할 때 그의 개인적 카리스마와 기동력을 살린 혁신적인 전술을 거론하지만 나폴레옹 자신은 전투 승리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병사 개개인의 사기와 전투 의지를 들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전투 때 가장 용감한 전사들을 앞장세우곤 했다. 나폴레옹은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병사들이고, 이들이 용감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승패와 직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잘 활용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강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지휘관의 용병술과 병사들의 살신성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중령 이준희 공군교육사령부 정치학 박사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17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