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해군의 중심 자리매김

현대 해군의 중심은 항공모함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따금 잠수함이 그 위치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비행단급의 항공기를 탑재한 정규 항공모함에 필적할 만한 전력과 작전적 유연성을 가진 군함은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항공모함의 가치는 확고부동하다.

1920년 7월20일 빌리 미첼이 주도한 미군의 실험에서 폭격기로 전함을 격침할 수 있음이 밝혀지면서 항공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 실험만으로 항공모함의 필요성이 충분히 입증되지는 못했다.

만일 항공모함에 탑재된 폭격기로 전함을 격침할 수 있다면 육상 기지의 장거리 폭격기만으로도 적 함대를 격파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미첼의 실험은 과장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험 당시 폭격기는 높은 명중률을 얻을 수 있는 초저고도에서 실험적인 대형 폭탄을 사용해 움직이지도, 대공포로 반격하지도 않는 구식 전함을 명중시켰을 뿐이었다.

당연히 항공모함에서 이착함이 가능한 제한된 크기의 함재기가 실제로 전함을 공격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1914년 영국의 아크 로열을 시작으로 미국 등 몇몇 나라가 항공모함을 제작했지만 해군 전력의 중심은 여전히 전함이었다. 항공모함은 함대 상공의 초계와 함포 사격을 위한 탄착 정보의 제공이라는 보조적 임무를 수행하는 2급 함선이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까지도 항공모함을 보유한 국가는 영국·미국·일본뿐이었으며 그나마 영국은 적절한 함재 항공단을 구성하지 못했다.

1941년 12월 일본 연합 함대는 아카키·가카·소류·히류·쇼가쿠·즈이가쿠 등 6척의 항공모함과 레이센 78기, 99식 함상 폭격기 129기, 97식 함상공격기 143기 등 도합 350기의 함재기를 투입해 미 태평양함대의 본거지인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당시 진주만에는 전함 9척,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6척을 포함해 102척의 함정이, 주변의 육상 기지에는 약 300기의 항공기가 있었다. 약 세 시간에 걸친 공습으로 전함 3척 침몰, 3척 대파, 3척이 중파된 외에 다수의 함선이 침몰하거나 파손됐고 육상 기지의 미군 항공기는 188기가 격파됐으며 159기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비해 일본기의 손실은 29기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대승리였다. 개발 이후 20년 동안이나 의심을 받아 온 항공모함의 위력을 실전에서 증명한 것이다.

승리의 요인은 항공모함에 탑재하는 함재기의 작전적 유연성이었다. 함재기는 그 자체의 능력만으로 볼 때 전함, 아니 대형 폭격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함재기로 비행단을 구성, 투입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일본 해군항공대는 전투기와 수평 폭격기 외에 급강하 폭격기나 뇌격기를 갖고 있었고 이들로 전함을 격침했다.

두 번째는 일본의 고성능 어뢰다. 당시 일본의 급강하 폭격은 장갑이 두터운 전함에 피해를 입힐 수는 있어도 치명타를 줄 수 없었지만 뇌격기의 어뢰 공격은 일단 명중하면 전함을 일격에 침몰시킬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미 해군 항공단의 주력은 급강하 폭격기였기에 만일 일본군의 어뢰 공격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당분간 전함이 해군 전력의 중심으로 남았을 것이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천심도 어뢰로 대표되는 주도면밀한 공격 준비다. 진주만은 항공 어뢰의 사용이 어려울 정도로 수심이 낮았지만 천심도 어뢰는 얕은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어뢰를 개량한 것이다.

사실 함재기에 의한 항공 공격은 이미 영국 해군이 지중해에서 실행(타란토 공습)했기에 새로운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수의 항공모함을 집중 투입, 공격을 성공시킨 것은 진주만 공습이 처음이었다. 진주만의 성공은 오랫동안 해상 작전의 중심이던 전함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대신 항공모함을 밀어 올렸으며 지금까지도 항공모함은 해군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 우보형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2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