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총통은 어떻게 발사하죠?”

필자가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자문할 때 작가들로부터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조선 시대 화약 무기의 구체적 사격법이었다. 그때 필자가 펼쳐 든 책이 바로 ‘신기비결’(神器秘訣·사진)이었다.

‘신기비결’은 조선 시대 각종 화약 무기의 장전법·사격법을 설명한 책이다. 일종의 화약 무기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한효순(韓孝純·1543~1621)이 1603년에 지었다. 한효순은 임진왜란 당시 병조참판과 경상·전라·충청 삼도 체찰부사를 지낸 인물이다.

병조참판이라면 지금의 국방부차관 격이고 체찰부사도 군대를 통제하는 고위급 문신 지휘관 직책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병조판서를 두 차례나 역임한 후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문신 출신임에도 풍부한 군 관련 경력을 바탕으로 화약 무기에 관한 전문 서적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

조선 시대의 수많은 병서(兵書) 중 화약 무기의 규격이나 제조법을 소개한 책은 적지 않다. 하지만 화약 무기의 구체적 사용법을 담은 책 중에 현재 전해 오는 것은 ‘신기비결’이 유일하다.

1563년 화약 무기 사용법을 담은 책인 ‘총통식’(銃筒式)이 간행됐지만 이 책은 전해 오지 않는다.

저자인 한효순은 ‘총통식’의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중국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참고, ‘신기비결’을 저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 시대에 천자총통을 어떤 순서로 발사했는지, 철환(鐵丸)은 어떤 방식으로 장전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신기비결’만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

‘신기비결’은 우선 대포와 조총 발사에 필요한 여러 도구와 장치의 종류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 천·지·현·황자 등의 대형 화포와 대·차·소승자총통이나 우·주·홍·황자총통 등 소형 총통의 사격 순서를 설명하는 총가(銃歌)를 게재했다.

불랑기·조총·쌍안총·백자총 등 임진왜란을 전후해 중국·일본으로부터 전래된 화약 무기의 장전 순서도 실려 있어 수록된 화약 무기는 총 18종에 달한다. 이 외에 화약 무기 훈련법인 습법(習法)과 취급상의 주의점도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신기비결’에 게재된 천자총통의 사격법을 살펴보자. 이 사격 순서는 정확하게는 천자총통에서 중연자(중형 납탄환) 100발을 동시에 사격할 때의 사례다.

우선 총통 내부를 청소한 후 점화 구멍으로 종이로 만든 약선을 넣는다. 총구로 화약을 넣고 종이를 넣어 화약을 덮은 후 나무 자루로 가볍게 쳐서 다진다. 이 화약은 포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으로 현대의 장약(裝藥)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발사 가스 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나무 마개인 격목(隔木)을 넣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실제로 발사할 탄환을 장전하는 단계다. 총구로 납탄환(중연자) 30발을 넣고 다시 흙을 넣는다. 이 단계를 반복해서 총 90발의 납탄환을 장전한다. 마지막으로 총구 크기에 맞는 큰 탄환(대연환)을 넣는다. 최종적으로 약선에 불을 붙이면 점화 구멍 속으로 불이 타 들어가 화약이 폭발하면서 발사된다.

‘신기비결’의 조선 시대 판본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아직까지 번역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29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