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위해 목숨바친 고려 개국공신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묘는 두 개다. 일설에 따르면 태조 왕건이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바친 신숭겸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잘린 두상을 금으로 만들어 두 개의 무덤 중에 넣고 장례를 치러 진위를 위장했다고 한다.

신숭겸(?∼927)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장군이다. 어릴 적 이름은 능산으로 전남 곡성군에서 태어난 뒤 광해주(지금의 춘천)에서 성장했다. 그는 몸집이 장대하고 용맹스러우면서도 활 쏘는 재주가 뛰어났다.

당시는 통일 신라가 무너져 가고 견훤·궁예가 각기 나라를 세운 후삼국 시기였다. 신숭겸은 궁예가 세운 태봉의 무장으로 있으면서 왕건 등과 더불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궁예가 점차 바른 정치에서 벗어나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신숭겸은 918년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의논해 궁예를 몰아내고 백성의 존경을 받던 왕건을 왕으로 모셔 고려를 세웠다. 신숭겸은 고려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개국 공신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고려 태조 10년(927) 견훤의 후백제군이 신라로 쳐들어가자 왕건은 신라를 도우러 신숭겸·김낙 장군과 함께 군사 5000명을 이끌고 공산 동수(지금의 대구)에서 견훤과 맞서 싸웠다.

이때 수가 많은 후백제군이 고려 군사를 포위해 크게 패하고 왕건이 위험하게 됐다. 신숭겸은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고려국이 멸망하겠다는 생각에 자신이 왕건과 체격·용모가 비슷한 것을 이용했다. 그는 갑옷을 바꿔 입고 자신이 대신 왕건의 마차를 타고 군사들을 지휘하며 적군 속으로 나아갔다. 이 틈을 타 왕건은 포위망을 뚫고 피할 수 있었다. 후백제군은 위장한 신숭겸을 왕건으로 오인, 집중 공격했고 그는 힘을 다해 싸우다 전사했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의 목을 왕건의 목인 줄 알고 베어 갔다.

이때 신숭겸의 거룩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포위는 풀리지 않았을 것이고, 포위가 풀리지 않았더라면 싸움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기에 삼한을 통일, 500년의 왕업(王業)을 이어받게 한 것은 신숭겸의 살신성인 정신이었다고 후세 역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신숭겸은 지략으로 위기 상황에 슬기롭게 대응했으며, 충의로써 임금을 받들고 살신성인을 몸소 보여 준 대표적인 실례를 남겼다. 즉, 인간의 도리를 일깨운 그의 위대한 공훈과 숭고한 절의는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우리의 국가관, 역사의식, 도덕관념, 문화 정서의 정립에 귀감이 되고 있다.

한편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죽음을 크게 슬퍼해 그의 왼발에 있던 북두칠성 무늬의 사마귀로 시신을 찾아내 잘 거두고, 목공에게 금으로 머리를 만들게 해 옷을 입혀 제사를 몸소 지내 주며 통곡했다.

또 왕건은 그의 높은 충성과 절개를 기려 장절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왕건은 그 후 나라의 잔치가 있을 때마다 신숭겸이 없는 것을 슬퍼해 짚으로 그의 형상을 만들어 관복을 입혀 앉히고 그를 잊지 않았다.

임금을 대신해 목숨을 버린 신숭겸의 충성심과 희생정신은 이후에도 크게 존경을 받았다. 고려 성종 13년(994)에는 태사라는 높은 벼슬에 올려졌고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태묘의 태조 사당에 공신으로 함께 모셔졌다.

또 예종 15년(1120)에는 예종이 서경(지금의 평양)에 행차해 팔관회에서 신숭겸·김낙 장군 이야기를 듣고 두 장군의 충성심에 감동받아 ‘도이장가’라는 노래를 지어 그 넋을 기렸다. 이 노래는 신숭겸의 사적을 기록한 책인 ‘장절공유사’에 실려 있다.

신숭겸이 죽자 그의 애마가 고향 가까운 태안사 뒷산에 와서 사흘간 울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 장군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살신성인의 표본으로 널리 기려지고 있다.

< 중령 이준희 공군교육사령부·정치학 박사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2. 1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