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오만·편견 탓에 참패 자초

이탈리아는 19세기 말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아가 침략의 제물로 선택한 상대는 에티오피아. 이 나라는 식민지 쟁탈전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에서 예외적으로 굳게 독립을 지켜 낸 나라였다. 이탈리아는 온갖 외교적 압박 끝에 무력으로 이 독립국을 병탄하려 했다.

이탈리아의 에리트레아 총독이던 바라티에리 장군은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를 생포해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에게는 이탈리아 정예 산악병들을 비롯해 약 2만5000명의 병력이 있었다. 이에 맞서 에티오피아는 20만 명에 가까운 병사를 소집했다. 그러나 3만4000명의 충성스러운 근위대를 제외하고는 소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구시대적 군대였다.

처음에 바라티에리는 에티오피아군이 적어도 수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전혀 몰랐다. 더구나 훈련 수준, 장비에 있어 에티오피아군이 이탈리아군의 상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원주민 출신 별동대가 일격을 당하고 나서야 이탈리아군은 전략을 수정, 아디그라트에 견고한 방어진을 펴고 에티오피아군을 유인하려 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군은 아두와 지역에 결진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대치전이 장기화되면서 양군은 모두 보급 유지의 어려움에 시달렸다.

바라티에리는 전황을 타개하고자 선제 공격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1896년 2월29일 밤 이탈리아 4개 여단이 서로 다른 길로 은밀히 전진했다. 아두와의 에티오피아군 숙영지 주변 고지를 장악하고 우세한 화력과 지형을 활용한 정면 공격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계획이었다.

그럴듯한 작전이었지만 터무니없는 낙관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주둔지를 떠나 행군을 시작한 이탈리아군 여단들은 험준한 지형과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바라티에리는 이 사실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전면에 나선 다보르미다 여단은 측면이 노출됐다.

이탈리아군의 진군을 눈치 챈 에티오피아군은 라스마코넨이 이끄는 3만 병력이 전장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집중 강타했다. 이어 산악 지형 곳곳에서 에티오피아군은 분산된 이탈리아군 여단들을 기습했다.

초반에는 에티오피아군 상당수가 소총을 쏘지도 않고 곤봉처럼 휘두르며 막무가내로 달려들다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9시를 전후해 에티오피아 메넬리크 황제의 2만5000 근위대가 투입되면서 이탈리아군의 기세가 꺾였다.

10시가 넘어서자 바라티에리는 퇴각을 명령했고 전의를 상실한 이탈리아군 2개 여단은 사실상 전멸했다. 무려 50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부상자 1400여 명, 포로도 2500여 명에 달했다. 에티오피아군도 1만7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독립의 대가로 충분한 승리였다.

아두와 전투는 에티오피아군이 단순히 숫자만 많은 야만인 집단일 것이라고 얕잡아 본 오만의 결과였다. 이탈리아군 장군들은 화력이 빈약한 에티오피아군에 유리한 산악 지형의 사지로 스스로 갇혀들고 있다는 사실을 최후까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국가를 우습게 본 오만과 편견 탓에 참패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2. 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