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소련 승리 이끈 주역

소련의 T-34(사진)는 1940년 9월 등장, 당시 다른 전차를 압도하는 성능을 가진 혁명적인 전차였다. 800m 거리에서 어떠한 적 전차도 격파할 수 있는 76.2mm 주포와 45mm 두께의 획기적인 경사장갑 차체를 채택, 방어력도 강력했다. 27톤의 다소 무거운 전투 중량에도 불구하고 500마력 V-2 디젤 엔진과 550mm 광폭 궤도를 보유, 웬만한 경전차보다 빠른 시속 54㎞의 최고 속도와 200㎞의 항속거리를 자랑했다.

이 시기의 전차 기술을 선도한다던 독일 3호 전차가 42구경장 50mm 주포, 30mm 장갑의 21톤 전차로 300마력 가솔린 엔진으로 40㎞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T-34는 혁명적인 성능을 보유했다고 할 수 있다. 제원상 T-34를 능가하는 전차는 47톤의 전투 중량을 갖는 소련의 KV 중전차뿐이었다.

근대 병기의 실험장으로 불린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소련은 고속전차 BT-5 50대, 다수의 T-26을 포함한 400여 대의 전차를 공화파에 지원했다. 하지만 얇은 장갑을 가진 이들 전차는 프랑코가 지휘하는 왕당파군의 75mm 슈나이더 야포, 37mm PAK 36 앞에 속속 불덩이가 됐다.

그동안 소련 전차들이 채택한 얇은 장갑으로는 더 이상 전장에서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음이 확인되자 보다 강화된 장갑을 채용한 새로운 전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38년 9월23일의 테스트에서 M. I. 코시킨이 설계한 A-32 전차는 45mm 주포를 탑재한 A-20과 경합해 유효성을 입증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A-32의 장갑을 강화, 전면 장갑을 45mm로 늘린 A-34 모델을 기반으로 T-34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1941년 2월에는 주포를 30.5 구경장 L-11에서 장갑 관통력이 향상된 41.5 구경장의 F-34 전차포로 교체했다.

1941년 6월22일 독일군의 소련 침공이 시작됐을 때 붉은 군대에는 967대의 T-34가 배치돼 있었다. 비록 T-34는 우수한 성능을 가졌지만 시계(視界) 불량, 무전기 미장착에 따른 지휘상의 어려움, 빈약한 설비의 포탑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성능 문제가 전차병들의 미숙한 조작, 지휘관의 경험·전술 부재와 맞물리며 소련군은 패배에 패배를 거듭한다. 하지만 1941년 10월6일 므젠스크 전투에서 T-34의 가능성이 드러난다. 이날 소련군 렐류센코 소장이 지휘하는 제1친위소총병군단이 휘하의 보병과 공수여단으로 독일 제2기갑 집단의 선도 부대인 제4기갑 사단을 막아서자 측면에 매복한 카투코프의 제4전차 여단이 독일군의 측위를 강타했다.

독일군 4호 전차들은 장갑·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매복한 소련군을 돌파하려 했지만 해질 무렵이 되자 제4기갑 사단의 장비 상당수는 집중 운용된 T-34 앞에 연기를 내뿜는 고철이 돼 독일군의 공세는 좌절됐다.

T-34의 우월성이 명백히 드러난 이 전투 이후 소련군 지휘관들은 독일군의 공세를 멈추거나 늦추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비전투 손실이 높았던 KV 중전차에 비해 T-34는 기동성과 전투력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1941년 11월 이후 붉은 군대는 동장군의 지원을 바탕으로 정예 시베리아 군단들을 투입, 독일군의 공세를 모스크바 문턱에서 좌절시킬 수 있었고 그 선두에는 T-34가 있었다.

T-34의 효과적인 우월성은 독일에 새로운 전차 개발을 촉발시켰고 그 결과 1942년 중반 이후 등장한 신형 전차 앞에 T-34는 더 이상 개별 성능에서 우위에 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34는 효과적이며 전장에서 입증된 신뢰할 만한 전차였다.

무엇보다 전시 체제로 전환된 소련의 엄청난 공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6만 대 가까이 생산돼 전장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로지나’(조국)라는 별명 그대로 태어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카추샤(다연장 로켓), Il-2 전투기와 함께 붉은 군대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전차가 됐다.

< 우보형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5. 12. 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