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武譜·사진)는 조선 시대 무관(武官)들의 인명록이다. 요즈음 말로 풀이하자면 ‘군인 인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무보’다. 기본적으로 무관들의 인적 사항을 주로 기록한 책이지만 특히 중점을 둔 것은 출신 집안과 가계다.

조선 시대는 본인의 능력 못지않게 출신 집안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어떤 인물이 어떤 가계 출신이며 조상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조선 시대에는 중요한 정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무보’가 탄생하게 된 것.

현재 전해 오는 ‘무보’는 서울대 규장각에 3종,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에 5종 등 총 15종에 달한다. 각 ‘무보’는 형식이 조금씩 달라 개인이나 특정 무관 집안에서 작성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규장각에 전해 오는 ‘무보’ 중에는 선조부터 고종에 이르는 300여 년 동안의 무관 인적 사항을 기재한 경우도 있다. 기재 형식을 살펴보면 우선 제일 위에 무관의 이름과 무과 합격 여부, 합격 연도가 적혀 있으며 그 아래 8대까지의 조상·외조·처부(妻父) 등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 양반 중 동반(문관)이 중시되고 서반(무관)은 천시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가면 군대를 장악하는 것이 정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앙 군영의 대장 등 주요 무관 직책은 요직으로 분류됐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장필기 연구원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18세기 이후에는 무관 명문 집안이 형성됐다”며 “이들 집안에서 전통 무반가의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무보”라고 설명한다.

조선 후기 무과 시험 합격자들의 성은 140개, 본관은 총 1400개에 달하지만 ‘무보’에 실려 있는 성은 70개, 본관은 200개에 불과하다. 무관 중에서도 나름대로 명문 무관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만 ‘무보’에 기록됐다는 이야기다.

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무보’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집안은 전주 이씨(451명·14.7%)다. 그 뒤를 전의 이씨(156명·5.1%), 덕수 이씨(136명·4.4%), 평산 신씨(134명·3.4%), 진주 류씨(101명·3.3%), 능성 구씨(91명·3%), 평양 조씨(90명·3%), 안동 김씨(89명·2.9%), 연일 정씨(88명·2.9%), 청주 한씨(82명·2.7%) 집안이 뒤따르고 있다.

전의 이씨는 주요 무관 요직 역임자를 다수 배출한 무관 집안이며 덕수 이씨는 충무공 이순신을 배출한 대표적 명문 무관 가문이다.

평산 신씨는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 장군을 비롯, 신립의 아들이자 병조판서·훈련도감 대장을 지낸 신경진 등을 배출한 조선 후기의 핵심 무관 집안 중 하나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러시아군을 저지한 제2차 나선 정벌 당시 총지휘관인 신유 장군도 평산 신씨 출신이다.

능성 구씨는 조선 시대에 총 56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이 중 무과가 363명으로 전체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전형적인 명문 무관 가문이다. 작가 이인화가 역사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 ‘누대에 걸쳐 군에 뿌리내린 능성 구씨의 인맥은 정조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묘사한 것은 능성 구씨 가문의 위상을 잘 보여 준다.

< 출처 : 국방일보, 2005. 12. 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