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군사 관련 유물 중에서는 기구한 사연을 가진 것들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1979년 경남 통영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의 수군(水軍) 관련 고문서(古文書)다.

거북선·판옥선의 건조 관련 기록, 판옥선의 탑재 장비와 화포 관련 기록, 수군의 인사 관련 기록 등 총 64장의 개별 문서로 구성된 이 조선 시대 고문서는 발견 과정부터 극적이다.

이 문서는 통영의 한 민간인 가옥의 벽지 상태로 발견됐다. 아마도 구한말 수군 통제영이 혁파되던 시절 흘러나왔음직한 고문서들을 문화재에 무지한 주인이 벽지로 사용한 것이다. 용케 이 문서의 존재를 안 한의사이자 유명한 고서 수집가인 서울의 김모씨가 고문서를 입수했다.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된 것은 아니지만 소문은 빨랐다. 전설적인 고문서 수집가이자 독도박물관장을 지낸 이종학씨도 소문을 듣고 김씨와 접촉했다.

안평대군의 글씨와 정상기의 ‘조선 8도 지도’ 같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자료들을 김씨에게 건넨 대가로 이씨는 통영에서 나온 고문서를 입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문서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여 년이나 지난 1998년이었다. 한 중앙 일간지가 이 고문서 발견 사실을 특종으로 대서특필했다. 1면, 2면, 40면에 걸친 대대적인 보도였다.

‘거북선 길이는 18m’ ‘임진왜란 당시 수군 관련 문서’ ‘베일 속에 가려진 거북선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제목과 기사 내용들은 독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른 일간지에서 특종을 받아 후속 기사를 썼을 만큼 파장도 컸다.

당시만 해도 곧 관련 논문이 쏟아지고 거북선의 실체가 밝혀질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의외로 학계의 반응이 없었다.

이순신 관련 전문가로 꼽을 만한 사람 중에 이 고문서를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도대체 언제 문서 전체의 복사본이 공개될 것인지 학계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중 원 소장자인 이씨가 2002년 세상을 떴다.

필자는 그 이후 2년간 최초 보도한 일간지 기자부터, 서지학자, 지방 모대학 연구소, 이순신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 50명이 넘는 관계 전문가를 접촉했으나 복사본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만나 보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통영 고문서를 소재로 정식 논문을 썼고 복사본도 갖고 있었던 분이 박혜일 전 서울대 교수였음을 확인했으나 얼마 전 운명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한 적도 있다. 이 문서는 여전히 신기루 같은 존재인 것.

최근 모 학예연구관이 복사본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학예관의 반응은 차가왔다. ‘함경도 일기’ 등 일부 이순신 자료들이 최근 위조로 판명된 만큼 통영 수군 고문서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왜 관련 전문가들에게 통영 수군 고문서를 진작 공개하지 않았는지 이유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거북선의 실체를 밝혀 줄 통영 수군 관련 고문서가 완전히 공개되기를 수많은 연구자가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진위 논쟁까지 불거진 것이다. 제대로 된 군사 문화재를 발굴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과연 통영 고문서가 물음표를 완전히 떼고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올 것인가.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그날을 기다려 본다.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기자, 2005. 12. 13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