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략 폭격기 ‘15톤의 나는 요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펠린 비행선이 런던을 공습한 이래 빌리 미첼·줄리오 두헤·휴 트렌차드 같은 장교들은 “전선을 넘어 적 후방 깊숙이 폭격기를 출격시켜 공업 시설과 주요 거점을 공격하면 적의 군수 산업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이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사상에 따라 만들어진 대표적 폭격기가 바로 B-17(사진)이다.

B-17은 단엽 4발 중폭격기로 6000파운드의 폭탄을 싣고 최고 시속 462km로 비행할 수 있으며 1만6000m 고도에서 최대 3220km를 날아갈 수 있다. M-2 12.7mm 기관총을 13정이나 탑재, 자체 방어력도 충실하다. 폭탄 장착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노든 폭격 조준기를 장착, 목표에 대한 정밀 폭격이 가능한 데다 생존성이 높아 전략 폭격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34년 미 육군항공대는 각 항공사에 시간당 속도 322~400km, 1600~3540km의 항속거리를 가지며 2000 파운드의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다발 엔진(multiengine) 폭격기의 개발을 요청했다.

미 육군항공대의 개발 요구는 ‘적 요격기들의 포화를 견딜 수 있는 방어력을 가질 여유가 있는 대형 폭격기를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무장으로 적의 전투기를 효과적으로 배제하면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폭격기 만능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1931년 쌍발 폭격기 수주전에서 글렌 마틴사의 B-10 폭격기에 패해 파산 위기에 처한 보잉은 신형 다발 엔진 폭격기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보잉이 모델 299로 명명한 새로운 폭격기는 1935년 7월 중순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 격납고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플랫 앤드 휘트니 R-1690-E 호넷 성형 엔진 4기를 주익에 단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날 미국 언론은 일제히 “15톤의 나는 요새가 등장했다”며 대서특필했고 이것이 그대로 이 폭격기의 이름이 됐다. 1935년 7월28일 첫 시험 비행에 성공한 모델 299는 3주 후 시애틀에서 오하이오 라이트 기지까지 3380km 논스톱 비행에 성공했고 시간당 속도 역시 406km로 군의 요구 조건을 무사통과했다.

모델 299의 성능은 좋았지만 미 육군은 채용을 망설였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당시로서는 너무 큰 기체 때문이었다. 하지만 잇단 시험 비행에서 보여 준 성능과 악화돼 가는 세계 정세가 맞물려 미 육군항공대는 1939년 최초의 양산형 B-17B를 39기 발주했다.

1942년 중반 이후 영국에 전개한 미 육군항공대의 B-17은 1943년 1월 빌헬름스하펜을 두들기며 독일 내 목표에 대한 전략 폭격을 시작했다.

실전에서 B-17은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희생도 컸다. 1943년 4월17일 브레멘의 Fw-190 생산 공장을 폭격하기 위해 115대의 B-17 폭격기가 출격했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고 독일 공군기의 요격으로 16대가 격추되기까지 했다.

10월14일 291대의 B-17을 투입한 제2차 슈바인푸르트 공습에서는 60대의 폭격기와 승무원들이 독일 상공에서 희생됐으나 500톤의 폭탄을 목표에 투하, 공장 생산력의 67%를 떨어뜨렸다.

제2차 세계대전 전 기간에 걸쳐 1만2731기가 생산된 B-17은 대부분 미 육군항공대에 납품돼 후속기인 B-24와 더불어 유럽 주둔 전략 폭격기 부대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전쟁 중 성능이 더 뛰어난 폭격기들이 잇따라 개발됐지만 B-17의 활약상은 그 어떤 폭격기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B-17 폭격기는 B-24나 랭커스터 폭격기보다 폭탄 장착량이 적었고 생산 대수 또한 B-24에 밀렸다. 하지만 B-17 폭격기는 우수한 방어력과 생존성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총 29만1508회를 출격, 유럽 전선에서만 64만 톤의 폭탄을 쏟아 부으며 독일의 산업 기반을 뒤흔들었다. 속도·폭장량, 심지어 생산 대수에서조차 B-17을 앞서던 B-24의 총 폭탄 투하량이 45만 톤, 다른 모든 연합군 항공기의 폭탄 투하량이 단지 46만 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더구나 B-17이 투입된 목표는 대부분 독일의 기간 산업 시설들이었기에 그 성과는 더욱 의미가 컸다. 이런 이유로 B-17은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역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3대 병기 중 첫손에 꼽힐 만한 우수한 폭격기로 전사에 기록되고 있다.

< 우보형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5. 12. 19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