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결정적 전환점

영웅 윌리엄 월리스를 그린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독립을 부르짖다 처형된 월리스의 이름을 외치며 잉글랜드군과 격돌,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것이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한 바녹번 전투였다.

1305년 월리스 처형과 연이은 메트벤 전투 패배 이후 스코틀랜드는 조직적인 저항력을 거의 상실했다. 그러나 로버트 브루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독립투사들은 우세한 잉글랜드군을 게릴라전으로 끊임없이 괴롭히며 다시 그 세력을 키워 갔다. 잉글랜드 왕위 교체기를 틈타 스코틀랜드의 성들을 하나하나 탈환해 가던 브루스는 마침내 1314년 스털링 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전략적 요지인 스털링의 함락을 방치할 수 없었던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는 2만5000명의 대군을 소집, 친정(親征)에 나섰다. 이에 맞서는 스코틀랜드군은 6000여 명의 보병, 700여 명의 기병에 소수의 단궁병뿐이었다. 세 배가 넘는 병력과 우수한 장궁병들을 갖춘 잉글랜드군과의 격차는 너무 두드러져 보였다.

브루스는 전력 열세를 극복하고자 바녹 천(川)변에 방책과 함정을 설치했다. 그리고 3.6m가 넘는 장창을 이용한 스킬트론이라는 원형 밀집 대형을 철저히 훈련시켰다.

6월23일 오후, 전장에 도착한 잉글랜드의 기사들은 손쉬운 적을 상대로 전공을 세우기를 열망하며 성급히 소규모 전초전을 벌였으나 잘 조직된 스코틀랜드군에 격퇴당했다.

다음 날 아침 절치부심한 잉글랜드군은 역시 스킬트론을 짜고 있는 적 앞에서 공격 대형을 갖췄다. 의기양양한 에드워드는 전공에 안달이 난 기사들의 돌격부터 명령했다.

그러나 지축을 뒤흔들며 전진한 중기병들은 곧 함정에 빠졌고 용케 적진에 육박한 말들도 스킬트론의 장창 앞에 고꾸라졌다. 예기치 않은 일격에 우왕좌왕하던 잉글랜드 기병들을 향해 브루스는 스킬트론을 전진시켰다. 고정 대형으로만 쓰이던 스킬트론이 움직이며 기병들을 천변 저택지로 계속 밀어내자 진창에 말려든 기병들은 무참히 쓰러졌다.

뒤늦게 에드워드는 장궁병들을 전진시켜 사격을 시작했으나 브루스는 혼란을 틈타 기병을 우회시켜 이들마저 기습했다. 접전 수단을 갖추고 있지 않던 장궁병들은 중기병의 기습에 역시 휩쓸려 버렸다. 정예 기병과 장궁병들이 격파당하자 잉글랜드 보병들은 전의를 상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200명이 넘는 기사를 비롯해 수천 명의 시신을 남긴 패주 행렬에는 에드워드 국왕도 끼여 있었다.

잉글랜드군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기병과 장궁병을 엉뚱하게 활용하는 우를 범했다. 장궁병이 먼저 전진, 기선을 제압하고 기병과 함께 보병이 밀고 나간다는 기본적인 전술 원칙은 실종됐다. 오만하고 섣부른 기병 돌격이 실패하면서 전열이 차례로 붕괴됐다. 장사정 병기의 이점이 철저히 무시된 결과였다.

평범한 이 진리를 무시한 에드워드는 결국 자신의 손아귀에서 스코틀랜드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5. 12. 2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