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승리 위한 기본인지 일깨워줘

17세기 중엽 영국은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와 찰스 2세를 지지하는 왕당파 간에 벌어진 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크롬웰은 청교도 정신으로 잘 단련된 기병연대가 주축인 신모범군(New Model Army)을 앞세워 왕당파를 연이어 격파했다.

크롬웰은 1650년 프레스턴 전투의 승세를 몰아 왕당파 세력에 치명타를 주고자 했다. 1만6000명의 잉글랜드군 병력은 그해 7월 에딘버러를 포위하고 데이빗 레질이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으로 구성된 왕당파 병력과의 일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레질은 전면전을 회피하며 보급 조건이 나쁜 적을 고사하려 했고, 그의 의도는 정확했다. 크롬웰의 군대는 8월 말이 되자 굶주림과 질병에 지쳐 포위망을 풀고 퇴각길에 올랐다.

레질의 스코틀랜드군 2만3000 병력은 지쳐 물러가는 잉글랜드군을 즉시 추격했다. 9월1일 던바 남쪽에서 따라잡힌 크롬웰에게는 1만1000 병력뿐이었다. 게다가 레질은 퇴로를 차단하고 유리한 고지대까지 장악했다. 크롬웰은 위험천만한 정면 승부를 하든가 앉아서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

레질은 완벽한 승리를 앞에 두고 치명적 오판을 했다. 그는 적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포자기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9월2일, 스코틀랜드군은 다음날 결전을 벌이기 위해 고지대를 버리고 내려와 공격 준비 대형을 짜고 숙영에 들어갔다. 중앙에 보병을 두고 좌우익에 기병을 날개처럼 펼친 대형은 열세인 적을 격파하기에 무난한듯 보였다.

그러나 크롬웰은 여전히 노련했으며 재빠르게 진형의 약점을 꿰뚫었다. 레질이 택한 숙영지는 배후가 좁아 위기 상황에서 좌우익이 유연히 공조하기 어려웠고 일각이 무너지면 후위에서 재편성에 들어가기도 곤란했다. 다음날 일전을 준비하며 잠자리에 든 스코틀랜드군을 향해 크롬웰은 야습을 선택했다.

다음날 새벽 4시, 정예 철기대를 앞세운 잉글랜드군은 스코틀랜드군 진지로 돌격해 들어갔다. 야습을 받은 스코틀랜드군은 혼란에 빠졌으나 잠에서 깨어난 중앙의 창병들이 대형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전진은 둔화되고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 결정적 순간에 크롬웰은 예비 병력을 총동원해 스코틀랜드군 최우익 기병에 공격을 집중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후방으로 진출한 철기대의 활약에 선전하던 스코틀랜드군은 빠르게 와해됐다. 재편할 여유도 없이 어지럽게 퇴각하며 3000여 병력이 전사하고 1만 명이 넘는 병력이 포로가 되고 말았다. 잉글랜드군은 고작 20명 전사에 58명 부상이라는 압도적 승세를 타고 에딘버러를 함락하고야 말았다.

레질의 스코틀랜드군은 전투 직전까지 적절하게 크롬웰을 괴롭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방어에 우세한 지형을 스스로 포기한 데다가 의도를 뻔히 노출시켜 가며 대낮에 공격 대형을 잡고 역습 경계도 게을리하는 우를 범했다. 용병에 있어 항상 자신의 의도를 최대한 숨기고 방어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최후의 승리를 위한 기본인지를 일깨워 주는 전례라 할 수 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1. 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