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60년 동안의 주요 안보 사건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되짚어 보는 새로운 기획물 ‘안보 100대 사건’을 신년 지면 개편 일환으로 새롭게 연재합니다. 먼저 50가지 주제의 국내 사건을 다룬 후 국제 50대 안보 사건도 연재할 계획입니다. < 편집자 >


뿌리 없는 열매는 없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이순(耳順)의 국군, 그 뿌리는 어디서부터인가. 더러는 국군의 정통성을 대한제국 군대→의병→독립군→광복군→대한민국 국군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역사 단절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 신생독립국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국군의 시원은 ‘조선국방경비대’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가을 미군정 당국은 해방 정국의 치안 유지와 난립하는 사설 군사 단체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을 포함하는 한국인 경비대 창설을 추진한다.

45년 11월13일 군정법령 제28호가 공포됐고 이에 따라 ‘국방사령부’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창설 준비에 돌입한다. 군정은 급선무였던 기간 요원 양성을 위해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했다.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입교 인원을 광복군 출신, 일본군 출신, 만주군 출신에 20명씩 할당했다. 그러나 정통성 시비와 주도권 다툼에서 불만을 품은 좌익 계열과 광복군 출신들은 불참하게 된다.

임정 요원들과 함께 귀국한 광복군은 그들이 건군의 핵심이 돼야 하며 일본제국군 출신은 배제돼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군정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회피나 보이콧보다 참여로 문제를 풀었다면 초기 신생 한국군의 정체성이 좀 더 바로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해 12월5일 개교한 군사영어학교는 46년 5월1일 그 후신인 경비사관학교가 설치될 때까지 약 5개월 동안 건군 주역 110명의 장교를 배출하게 된다.

출신별로 보면 일본군 출신 87명, 만주군 출신 21명, 중국군 출신이 2명이었다. 이 중 78명이 장군으로 승진한다. 대장 8명, 중장 26명이 돼 48년부터 69년까지 육군참모총장직을 그들끼리 인수인계하는 등 초창기 육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됨에 따라 워싱턴은 한국국방군 창설 계획을 보류시킨다.

그러나 하지 중장은 당면한 치안 유지를 위해 점령군 사령관 재량 하에 소위 ‘BAMBOO 계획’을 수립, 규모를 줄인 경비대 창설을 추진한다. 그 결과 46년 1월15일 ‘Korean Constabulary’가 탄생한다. 한국 측에서는 ‘조선국방경비대’라고 했다.

서울에서 제1연대가 창설된 것을 시작으로 대전·이리·광주·부산·대구·청주·춘천에 2연대부터 8연대까지 창설되고 11월16일 제주도가 도로 승격됨에 따라 그곳에 9연대가 창설됐다.

46년 3월29일 국립경찰이 분리됨에 따라 국방사령부는 국방부로 개칭됐다가 소련이 ‘국방’이라는 용어에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군정은 이를 ‘국내경비부’로 개칭했다. 한국 측에서는 ‘통위부’라고 불렀다.

경비대는 창설 초기 충원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초대 통위부장과 경비대 총사령관에 광복군 출신이 임명되자 정체성 시비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지원이 대거 늘어나 필요한 인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경비대는 47년부터 본격적 증편이 이루어져 정부 수립 때까지 5개 여단 15개 연대로 증강돼 규모의 군대로 면모를 갖추게 된다.

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조선국방경비대’는 대한민국 육군에 편입, 법제화돼 조선해안경비대와 함께 오늘의 대한민국 국군의 주축이 된 것이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결과는 창대했다.

< 김영이 군사평론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1. 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