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 시절 로마에 가장 치욕적인 참패를 안겨 준 전투가 카라에 전투다.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는 명망 귀족들이 부상하며 공화정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폼페이우스·카이사르·크라수스 등 세 명이었다. 이들 세 명의 권력 경쟁이 격화되면서 그 부산물로 카라에 전투가 시작된다.

무골로 이름난 폼페이우스·카이사르와 달리 크라수스는 대중의 인기를 끌 만한 전공이 부족했다. 그는 새로운 무훈의 대상으로 파르티아 왕국의 정복을 결정하고 원로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을 동원했다.

시리아에 도착한 크라수스는 본격적인 침공 계획을 확립해야 했다. 그의 휘하에는 7개 군단 2만8000명을 주축으로 총 5만에 가까운 우수한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영광의 개선에만 목말랐던 그는 전장과 적 전술의 냉철한 탐구를 게을리했다.

로마의 동맹국 아르메니아는 파르티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6000의 기병을 지원하면서 북쪽 아르메니아 방향에서 침공할 것을 권고했다. 이쪽은 산악 지대가 많아 기병에 크게 의존하던 파르티아군이 기동하기에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크라수스는 오만하게도 이 권고를 거부했다.

크라수스는 기원전 53년 침공을 개시한 이후에도 실수를 연발했다. 척박한 지역을 가로지르는 행군에서 부장들은 유프라테스 강 연안을 따라 수원과 보급로를 확보해 가며 전진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적이 가까이에 있다는 첩자의 말에 넘어가 이곳을 벗어나 폭염이 이글거리는 평탄한 지형을 통해 카라에로 진군했다.

사막을 횡단하며 지친 로마군 앞에는 파르티아의 혈기 넘치는 수레나가 이끄는 기병들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파르티아군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전 병력이 기동력을 갖춘 기병이었다. 그중 1000명이 말에게까지 갑옷을 입힌 중장 창기병(카타프락타리·사진)이었고 나머지 9000명은 활을 무기로 하는 궁기병으로 구성됐다.

로마군은 거대한 방진을 짜고 위력 수색에 들어갔으나 처음에는 몇 안 되는 소수의 적 기병만이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고성과 함께 언덕 뒤에 숨어 있던 적 주력이 나타나 로마군 방진을 향해 돌격하며 화살을 퍼부어댔다. 강력한 활의 위력은 로마군 보병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다급한 크라수스는 아들 푸빌리우스에게 6500명의 경기병을 주고 적 기병을 요격하라고 명령했다. 로마군 기병의 돌격을 맞아 파르티아 기병들은 압도돼 후퇴당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 역시 속임수였다. 패주하는 듯하던 파르티아 기병들은 갑자기 돌아서 로마군 기병을 에워싸고는 또다시 화살 세례로 압도했다. 결국 로마군은 보병 방진과 기병이 완전히 분리된 채 섬멸당했다. 전사자 2만 명에 포로도 1만 명에 이르렀으며 크라수스와 푸빌리우스도 효수돼 전리품으로 나뒹구는 신세가 됐다.

크라수스는 적정에 정통한 이들의 조언을 묵살하고 영광을 향한 손쉬운 길의 유혹에 빠져드는 실수를 범해 고대 로마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작은 전투도 물론일진대 국가적 일전에 임하는 자세는 한층 적과 나를 살피며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카라에 전투는 전공을 달성하겠다는 지휘관의 개인적 욕망이 지나칠 경우 전장에 필요한 냉정한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헛된 공명심은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1. 9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