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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호 함상공원 탐방기




논산에서 공주, 예산 방면으로 이어진 한적한 32번 국도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라 그런지 가는 내내 마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고, 차창 밖으로 다가왔다 사라져 가는 도로 양쪽의 파아란 하늘이며 산이며 나무는 이제 곧 봄이 머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이렇게 32번 국토를 타고 1시간 30분 남짓 가다가 다시 삽교방면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달린 지 10여분. 어디선가 갑자기 낯설지 않은 내음이 코끝에 물씬 전해 온다. 약간은 비리면서도 짠 내음! 그것은 푸른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내음, 바로 그것이었다.

푸르고 진한 바다 내음 뒤로 그 기세도 위풍당당한 우리의 해군 노병 화산함과 전주함은 그렇게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다.


■ 동양 최초의 군함 테마공원, ‘ 삽교호 함상공원’

충남 당진군 신평면 삽교천 방조제 서쪽 끝 삽교호 유원지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동양 최초의 군함 테마공원인 삽교호 함상공원은 영예롭게 퇴역한 해군 함정 2척을 이용한 이색 나들이 코스로 작년 4월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일반인 신분으로는 가까이 가

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승선하기는 더더구나 불가능한 군함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삽교호 함상공원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해군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우리 해군과 해병대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데 더 없이 좋은 공간이 생겨 마냥 가슴 뿌듯할 뿐이다. 지금까지 다녀간 관람객만 해도 벌써 40만 명이 넘는다니 서해안의 인기있는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와 연계하여 충청남도의 관광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다양한 문화공간 제공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충청남도와 당진군청, 지역주민은 물론 민간기업까지 합심하여 제3섹터 방식으로 조성된 삽교호 함상공원은 ‘3E’를 조화시킨 미래지향적 E-park를 구현하고 있다. 해군, 해병대의 주제별 전시관과 함정 내·외부 체험, 항공기의 실제 모습 등을 통한‘교육적 즐거움(Edutainment)’과 영상관, 게임센터, 카니발 플라자, 실내 위락시설 등을 통한‘유희적 즐거움(Entertainment)’과 함께 선상 카페, 노천 카페, 식당 등에서는 다양한‘먹는 즐거움(Eatainment)‘을 선사한다. 다분히 교육적인 요소를 즐거운 체험으로 변화시켜 청소년들에게는 바다에 대한 동경과 해군, 해병대의 친근함을, 청·장년층에게는 현역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는 자녀와 함께 정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이색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도저히 접할 수 없었던 함상공원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잠시나마‘바다의 신사’인 해군과‘귀신 잡는 해병대’가 되어 보는 것도 커다란 기쁨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매표소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널따란 부두시설 끝으로 거대한 군함 두 척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왼쪽의 함선이 대형 상륙함인 화산함이고 그 옆에 있는 것이 바로 구축함인 전주함이다.

관람은 대형 상륙함인 화산함에서부터 시작하도록 되어 있다. 화산함은 전장 99.6m, 전폭 15.3m로 적의 해안 상륙작전과 수송 임무를 수행하는 함정으로 승조원 150명, 수륙양용전차 15대, 트럭 15대, 해병대 작전병력 500여명을 수송할 수 있으며 통신시설이 우수하여 주요 작전과 훈련 때 사령관이 승선하는 함정이었다. 화산함 내부는 들어서자마자 <해군과 해병대의 성장과 발전과정>을 시작으로 <함정과 함포의 변천사>, <연평해전의 재현>, <해병대의 상륙작전과 활약상>, <군 특수용품 전시 및 입체 디오라마>, <특수부대 요원의 밀랍모형과 영상설명> 등 갖은 볼거리를 현실감있게 표현해 놓았다. 특히, 해군과 해병대의 다양한 복식과 각종 함정의 역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내화살표를 따라 계속 들어가다 보면 해군, 해병대의 선 내에서의 생활모습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놓아 한층 실감을 더해 준다. 비좁은 선 내에서 공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3단으로 설치해 놓은 침상과 좁은 취사실이며 식당 등을 관람하고 나면 이렇게 좁고 힘든 곳에서도 우리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해군, 해병대의 노고에 대해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상륙작전 당시의 해병대의 실제 군장 무게를 느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직접 둘러 메어보니 웬만한 성인남자도 한번에 둘러메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화산함의 볼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배를 이용해 바다를 많이 여행해 본 사람이라도 배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조타실에 한번 들어가 보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그것은 해군에 복역했던 군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화산함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좁은 철계단을 오르면 화산함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조타실이 나타난다. 조타실(操舵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영화에서나 보았을 커다란 조타륜(操舵淪)이다.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저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만 같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함장 의자다. 함장 의자는 함장 허락 없이는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앉지 못한다는데 여기서는 마음대로 앉아 보아도 나무라는 이가 하나 없다. 함장 의자 곁에는 실제 전투모도 준비되어 있어 함장 전투모를 쓰고 함장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기념사진으로 담고 나니 절로 웃음이 난다.

화산함과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함선인 전주함은 구축함으로서 전장 120m, 전폭 12.5m의 대공, 대함, 대잠 전투능력을 골고루 갖춘 전투함이다. 5인치 함포, 미사일, 어뢰, 폭뢰, 기관포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군함의 내부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면 함교와 작전실, 레이더실, 함장실, 사관과 사병 취사장, 수병 내무반 등 해군의 생활과 군함 시설물을 직접 체험할 수가 있다. 두 함정 모두 선 내가 상당히 복잡하여 설명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안내화살표를 따라 구경만 하는데도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화산함 관람에 이어 전주함 관람까지 모두 끝내고 선상으로 나와 보니 마침 썰물이라 두 함정을 떠받치고 있는 철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삽교호 함상공원은 완전 물막이가 된 계선장에 함정을 정박시킨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서해의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 특수공법으로 두 함정을 이 철 구조물 위에 올려 고정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밀물 때면 마치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형태를 띠게 되어 썰물 때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선상에서 한동안 쌀쌀한 바닷바람과 마주하고 있으니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난다. 각 군함에는 선상 카페와 노천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봄이라 해도 아직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노천카페는 문을 닫고 선상 카페만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반긴다. 선상 카페에서는 각종 허브 차와 간단한 식사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콧속 깊이 전해 오는 상쾌한 허브 향 속에서 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서해대교를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이기도 하다.


■ 돌아오는 길에 들러 본‘ 추사고택’

돌아오는 길에는 함상공원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추사고택을 찾았다. 추사고택은 조선 헌종 때의 문신이었으며 서예가이자 실학자로 후세에도 그 이름을 크게 떨치고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경내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정원 한 가운데 서 있는 아담한 오석(烏石) 빗돌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보니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이다. ‘한 겨울이 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라는 구절로 더 유명한 세한도는 선생이 제주도 유배시절에도 변함없이 찾아 주고 역관으로 연경에 갈 때마다 귀한 서적을 구해 준 고마운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주었다는 작품이다. 세한도를 한참동안 쳐다보며 9년 간의 암울하고 지루한 제주도 유배생활 속에서도 오늘날 우리가‘추사체’라고 부르는 독특한 경지의 이 글씨가 나왔다고 생각하니 선생의 성품과 의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빗돌 뒤로 보이는 추사고택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옛 양반 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동향을 하고 있고 사랑채는 좀 떨어진 곳에 ㄱ자형으로 남향을 하고 있는데, 선생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진이 서울에서 경공장(京工匠: 한양에서 나라 건축을 전담하는 목수)을 불러다가 지은 것으로 모두 53칸에 이르는 대저택이다. 사랑채의 화단 앞에는 자그마한 사각 빗돌에 선생이 직접 석년(石年)이라고 새긴‘해시계’가 서 있고 고택 남쪽으로는 잘 가꾸어진 선생의 묘가 있다. 가까이서 본 선생의 묘는 선생의 성품 마냥 봉분도 나즈막하고 석물 치장도 소박하였지만 한쪽에 서 있는 반송 한 그루는 선생의 생전 모습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그 풍채가 자못 지조있고 그윽하였다.

고택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둔덕을 하나 넘으면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둘째딸)의 묘와 열녀문이 나온다. 이 열녀문은 선생의 증조부가 젊어서 돌아가시자 그의 부인 화순옹주가 식음을 전폐하고 14일 만에 남편을 따라 순사하자 정조가 자기의 고모의 정절을 추모하여 내린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북쪽으로 400m 정도 가다 보면 영의정을 지낸 선생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가 있고, 그 앞에 보물 제106호로 지정된 백송(白松)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백송은 선생이 24세 되던 해에 아버지 유당 김노경을 따라 연경에 갔을 때 씨를 얻어 와서 심은 것이라고 하니 사람 나이로 치면 200살이 훨씬 넘은 셈이다. 줄기와 가지가 모두 희고 잎만 푸른 진기한 소나무인데, 수명이 다해서인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이미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었는데, 가지도 무성하지 않고 잎에도 윤기가 없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러움을 더해 준다.


■ 다시 일상 속으로

해는 이미 서산에 걸리고 아직은 이른봄의 짧은 해를 탓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 탄생지로 국내 제1의 카톨릭 성지인 한국의 베들레헴 솔뫼 성지와 서해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 월몰을 볼 수 있다는 서해의 땅 끝 마을인 왜목 마을을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갈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길에는 차창 밖으로 어슴푸레 깔리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저녁 노을이 모처럼 느껴 본 삽교호 함상공원에서의 이색적인 즐거움과 추사고택에서의 경건함을 가슴에 묻고 또 다시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는 나를 반기기라도 하는 듯 붉은 손짓을 하고 있었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3-11-14 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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