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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은 기적 같은 승리였다 (2)

■ 울돌목이란 이름?

이 해전의 지명을 보면 명량(鳴梁·明梁), 울돌 또는 울도(蔚島) 울두홍이라 하여 다양하다.

먼저 명량해전이 있었던 그해 1597년 11월 10일에 조정에서 받은 겸 삼도 수군 통제사(兼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의 장계 - 결과보고에 이런 글이 있다.

“한산도가 무너진 이후 병선과 병기가 거의 다 유실되었다. 신이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 김억추(金億秋) 등과 전선 13척, 초탐선(哨探船) 32척을 수습하여 해남현(海南縣) 해로의 요구(要口)를 차단하고 있었는데 적의 전선 130여 척이 이진포 앞바다로 들어오기에 신이 수사 김억추 조방장 배흥립(裵興立) 거제 현령 안위(安衛) 등과 함께 각기 병선을 정돈하여 진도(珍島) 벽파정(碧波亭) 앞바다에서 적을 맞아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운바 대포로 적선 20여 척을 깨뜨리니 사살이 매우 많아 적들이 모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으며 머리를 벤 것도 8급이나 되었다. …녹도 만호(鹿島萬戶) 송여종(宋汝宗)·영등 만호(永登萬戶) 정응두(丁應斗)가 잇따라 와서 힘껏 싸워 또 적선 11척을 깨뜨리자 적이 크게 꺾였고 나머지 적들도 멀리 물러갔는데 진중(陣中)에 투항해온 왜적이 홍기(紅旗)의 적선을 가리켜 안골포(安骨浦)의 적장 마다시(馬多時)라고 하였다.”(『선조실록』94권 선조30년 11월 정유)

이 보고서에는“해남현 해로의 입구”니 “진도 벽파정 앞바다”라고 하였다. “명량”이라는 지명은 나오지않는다.

그러나 충무공이 쓴 명량해전이 있었던 9월 16일의 일기에는“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적선이 명량(鳴梁)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다”고 하여 해전 장소가“명량”이라고 했다. 이 말에서 왜적선은 명량수로를 이미 통과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만약 통과했다면 그 전투에서 충무공은 승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중철색이 운용되기 직전의 표현이므로 그 수로를 통과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년째인 1600년 6월 15일에 도원수요 좌의정인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남방을 순시하고 와서 보고한 것이『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정유년에 울도(蔚島)와 명량도(明梁島)에 왜선(倭船)이 바다를 뒤덮어 올 때 안위(安衛)가 하나의 판옥선(板屋船)을 띄워 해전에 임했지만 적들이 이 배를 깨뜨리지 못했는데 아마도 적선이 작았기 때문에 쉽게 대적할 수 있었던 탓인가 합니다”(『선조실록』126권 선조 33년 6월 병술) 여기에서는 같은 해전을 놓고 그 장소가 “울도(蔚島)와 명량도(明梁島)”라고 했다.

“명량도(明梁島)”는 그 소리로 보아“명량(鳴梁)”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울도(蔚島)”는 또 무엇인가? 이것은“鳴”곧“울명”자인 것으로 보아, 같은 소리의 “蔚”로도 나타낸 것 같다. 이것은 같은 장소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울도목(鳴梁)”(『太陽이 비치는 길로』이은상, 삼중당, 1973)“울두목 즉 명량(鳴梁또는 鳴洋)(『충무공 이순신』조성도, 동원사, 1975) “울돌목”(『명량대첩의 재조명』해남문화원, 1987), “울돌목(鳴梁項)”(『구국의 명장 이순신』최석남, 1992)이라 했지만, 결국 같은 표현이다.

이것은 수로를 따라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에서 만들어진 글이다.

그런데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이 지은『택리지』에는 명량해전에서 수중철색을 사용하여 이겼다고 하면서, “해남현 삼주원에서 돌맥이 바다를 건너 진도군이 되었는데 물길로 30리이며 벽파정이 그 입구가 된다. 삼주원에서 벽파정까지 물 속에 가로 친 돌맥이 다리[梁]같으며 다리 위와 밑은 끊어 지른 듯한 계단으로 되었다.

바닷물이 밤낮없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自海南縣三洲院石脈渡海爲珍島郡水路三十里而碧波亭實當其口水中石脈自院至亭橫亘如梁而梁上梁下截如階級海水日夜自東趨西)”고 하였다.

여기서“삼주원·진도·벽파정”이란 지명이 나오며 조류의 방향이 언제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고 하여 진도와 해남군 사이의 수로와는 다르다.

이“삼주원(三洲院)”은『대동여지도』에 나오는 “삼지원(三枝院)”과 같은 곳이며 『대한민국 지도』의 영암군“삼호면(三湖面)”일 것이다.

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경세유표』에서, “만력 임진년과 정유년 난리에는 다만 충무공 이순신의 힘을 입어서 왜적이 울두홍을 넘지 못했다.(至萬曆壬辰丁酉之難獨賴忠武公李舜臣之力賊不踰)”이라 했다.(『經世遺表』卷3 郡縣分隷) 여기서“울두”는“울도”와“명량”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물이 많이 흐르는 “큰 골짜기”이므로 막으면 못이 될 수 있는 곳 “ 보 [ 陂( 피 ) ] · 둑 [ 堤(제)]·목[項(항)]”이라는 뜻이다. “울두홍”은“울두피”와 같은 뜻이며 이곳은 호북성 당양현(當陽縣) 양자강 유역에 있으며 그 남쪽에“지강(枝江)”이 있다. 이“지강”이 앞에서 말한“삼지원(三枝院)·삼주원(三洲院)”과 같은 이름에서 딴 것이리라. 아니면“지강”이 변형된 이름일 것이다.

이렇게 한 곳의 지명을 두고 여러가지로 부르기도 하며 그 지명을 따와서 같이 부르기도 하여 역사의 사실을 혼란스럽게 한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02-18 16: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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