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언

명량해전(鳴梁海戰)은 임진왜란 해전사의 길이 빛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충무공 이순신(忠武公李舜臣)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지극히 열세한 패잔 함대로 숫적으로 10배가 넘는 일본함대를 크게 격파한 대승첩이었다. 그러므로 이순신 하면 곧 명량대첩을 연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깊이 각인되어 온 해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는 근래 장병들로부터 요즘 해군의 인쇄물들에 명량해전과 관련한 함선수가 자신들이 배웠던 것과 다른 것 같은데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그래서 불원간 이에 관한 의견을 정립하여 발표하고자 생각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한 차제에 필자는 최근의 “해군” 지 2001년 7, 8월호에서“명량해전은 기적같은 승리였다”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 글에서 저자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이분(李芬)이 지은 행록(行錄)을 인용하여 명량해전의 적 함선수(艦船數)는 333척이 올바른 것으로 판단하였는데, 필자의 견해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 이렇게 해군지를 통하여 간략하게 의견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울러 명량해전과 관련하여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조선수군이 격파했던 적 함선수, 이순신 함대의 전선수(戰船數)도 함께 고찰해 보았다.


2. 명량해전의 적 함선수

명량해전의 일본 함선수는 문헌에 따라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임진왜란의 해전을 기록한 문헌은 여러 가지가있지만, 명량해전과 관계되는 중요한 문헌자료와 그 문헌에 기록된 함선수는 다음 표1과 같다.

표1.명량해전의 일본 함선수와 조선수군의 전과

옆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량해전의 일본 함선수는 “130여척”에서“5-6백척”까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숫자 중에 서 과연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까운가를 하나하나 검토해보기로 하자.

먼저 위 표의 순번1과 순번2는 이순신의 친필로 된 정유년 일기(丁酉年日記)인데, 두 일기가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본 논의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사료(史料)이다. 이순신은 정유년 일기를 두 번 기록하여 남기고 있는데 두 번째 기록한 것(순번2)이 약간 자세하다. 정유년 일기들은 해전을 수행한 최고지휘관이 적선을 직접 확인하여 친필로 기록한 것이므로 최상의 신뢰도를 갖는 사료이다. 따라서 함선 숫자에 관한 정답은 바로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이 일기들에 의하면, 일본 함선수는“133척”또는“130여척”중의 하나이다. 다만 참고할 것은 이순신이 해전 직전에 탐망군(探望軍)으로부터 적의 세력이“200여척”이라는 정찰결과를 보고 받았음을 일기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순신에게 이 숫자는 확인되기 이전의 첩보(諜報)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위 표의 순번3의 사대문궤(事大文軌)와 순번4의 선조실록(宣祖實錄)에는 이순신의 장계(狀啓)를 기초로 조선정부가 작성하여 명나라 장수에게 통보한 명량해전의 극히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두 문헌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거기에 의하면 일본 함선수는“130여척”이며 이순신의 정유일기2의 숫자와 동일하다. 그러나 유성룡(柳成龍)은 순번5의 초본징비록(草本懲毖錄)에서“200여척”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순신의 정유일기1의 탐망군 보고와 같으므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또한 순번6의“5-6백척”도 이순신의 기록과 차이가 크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 순번8은 이분(李芬)이 지은 충무공의 행장(行狀)이며, 최소한 1700년 이전에 발간된 충무록(忠武錄)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으로서, 명량해전의 일본 함선수가“13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1) 이 행장은 순번9의 1715년에 간행된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에 행록(行錄)으로 제목이 바뀌어 삽입되어 있으나 내용은“133척”으로 동일하다.(도2) 1715년에 간행된 행록은 그 이후에 간행된 여러가지 충무공가승의 행록과 내용이 동일하며, 명량해전의 일본함선수가 모두 “133척”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매우 특이하게도 이분의 행록이 순번11 즉 1795년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실리는 과정에서 명량해전의 일본 함선수가 갑자기“333척”으로 바뀌어 기록되어 있다.(도3) 그리고 이러한 바뀌어진“333척”이라는 숫자는 그 후 간행된 여러 문헌에 자주 인용되어 왔다. 물론 이 숫자는 이충무공전서 편찬자 의 커다란 오류이다.

한편 순번12의 이충무공전서에 실려진 난중일기(亂中日記)의 정유일기(丁酉日記)도 본래의 두권이 한권으로 통합되면서 편저자 임의대로 일본 함선수를“330여척”으로 바꾸어 기록해 놓고 있는데, 이 또한 이충무공전서 편찬자의 커다란 오류이다. 근세의 허다한 학자들이 1795년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의 이러한“333척”또는“330여척”이라는 잘못된 숫자를 훨씬 이전에 간행된 원 사료(原史料)와 대조하는 것을 소홀히 한 채 사실로 인정해버리는 착오를 반복해왔는데, 이것은 우리가 주의해야할 점이다.

< 해군사관학교박물관 기획실장겸교수 정 진 술 >

< 출처 : 해군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