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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끼나와 해전 (下)



「가미카제」의 최후 대공격전은5월11일 새벽에 있었다. 항공모함의 대공포가 적기 3대를 격추시키는 동안 항모소속의 전투기들은 69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그중 두대는 미셔 제독의 기함인 벙커힐 호에 자폭하기도 하였다. 충돌과 그로인한 화재는 402명을 사망케했고 그중 13명의 참모를 전사케했으며 264명이나 부상을 입혔다. 미셔 중장과 주요참모단은 5월 6일 활동을 재개하였던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잉글리쉬호로 바꿔탔다.

이 공습은 미셔제독의 성미를 건드린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은 공습을 되풀이 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었기에 그는 「가미카제」를 시도하는 본거지까지 날아가 그 뿌리채 날려 버리기로 결심했다. 5월12일 정오 다음날 아침 일출시 일본 쿠슈로 날아갈수 있도록 대기중이던 항모에 명령을 내렸다.

2개Task Group 58-1과 58-3이 참가되었다. 공격에 앞서 어둠속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야간 전투원은 야간 공격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저들은 사실상 중요한 비행장을 거의 모두 강습하여 12 대의 적기를 아군의 피해없이 격추시키며 큐슈섬을 뒤덮었다.

일본군은 미리 항공모함기의 내습을 알았고 그 지역이 쿠슈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13번이나 적을 강타한 700회 출격에 더 이상 항거치 못했다. 공격할만한 목표물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자 어떤 조종사들은 공업시설이라 보여지는 곳이나 철로를 파괴했다. 공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날밤 엔터프라이즈호의 제2파 공격대는 다시 쿠슈와 시고꾸 항 전역을 공격했다. 이들은 47문의 로켓을 발사하고 100파운드 폭탄 7톤을 투하했다. 또한 목표물 지역에서 한개의 Oscar와 3대의 비행기를 주력부대 근방에서 격추했다. 그러자 죽은체 하며 대응을 않고 있던 일본군은 이를 갈며 야만적으로 역습해 왔다. 그들은 어느것이 자기들의 주공격물인가를 곧 입증해 주었다.

약30대 이상의 적비행기가 6시에 Task force주위를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 레이다에 잡혔고 몇대의 가미카제가 고사포망을 뚫고 야간전투원 침실과 미셔제독의 기함으로 들어왔다. 그 비행기는 엔터프라이즈 전방 승강기 바로 뒤에 격추하였다. 폭탄은 비행갑판을 꿰뚫고 승강기 밑창에서 폭발하였다. 거대한 승강기를 공중으로 수백 야드나 날려버리고 비행갑판을 거꾸로 뒤집어 엎어 놓았다. 화재가승강기 밑창과 격납고 갑판에서 일어났으나 효과적인 소화작업으로 30분만에 완전 진화되었다.

그러나 미셔 제독은 한번 더 깃발을 옮겨야 했다. 이번에는 Randolph호 함미로 기어오르면서 미셔 제독은 엔터프라이즈 신호사에게 Task force에 메세지를 보내도록 지시하였다. "이보다 더 늙은 대머리에 머리칼은 게속 자랄 것이다"

이틀간에 걸친 쿠슈공략전에서 적기 72대를 공중에서 격추시켰고 73대가 지상에서 불타버렸으며 167대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뿐만아니라 조병창, 건물, 격납고와 기관차 등이 폭격당했다. TF58은 14대의 비행기를 잃었을 뿐이다.

5월24일, 또다시 TF58은 남부 쿠슈 비행장에 대해서 98대의 소탕전투대를 떠나 보냈다. 「가노요」비행장에서는 날개밑에 폭탄을 장착하고 있는 폭격기 70대를 파괴했다. 얼마 안되는 부차적 공격적 목표물이 발견되었다. 이는 TF가 전번 공격에서 유례 없을만큼 훌륭한 작전을 펼쳤다는 증거물이기도 했다. 아군 비행기는 3대가 떨어졌으며 84대의 적 비행기가 파손되었다. 아군의 피해는「가노요」비행장의 대공포화에 입은 것 뿐이었다.

5월27일 야간에 제5함대는 제3함대로 임무교대 되었다.

사령부에서는 전략전술에 대해서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다. 테스크포스는 계속하여 오끼나와를 뒤덮고 쿠슈를 공략했다. 기회있는 대로 전투함들은 섬의 여러 목표물들에 포격하였다. 6월2일과 3일 그리고 6월 8일에 또다시 멕케인은 항모공격을 쿠슈에 감행했다. 두번에 걸친 공습이 모두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으나 먼저번의 공습이 매우 치열해서 겨우 77대의 적기를 때려부셨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일본군의 대공화력이 증가되면서 아군기 18대가 희생되었다. 「우리는 일본전투기 훈련소 교관들과 교전했던것 같다」며 대기중에 있는 12명의 조종사 중의 한명이 6월2일 전투에서 귀환하여 보고했다. 「이런 비행법은 나는 처음이야」라며 그는 말을 계속했다. 「놈들은 모든 악조건에서도 편대를 짠단 말이야 저놈들은 고리를 돌려 우리 뒤를 쫓으려고 반대쪽으로부터 줄을 지어 높은 데서 내려 오기 때문에 기관포가 보인단 말이야 그 싸움이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30분이나 끌었는데 한 20년은 된 것 같아」쿠슈와 가쿠시마 만에 빠진 요크타운 조종사 1명을 PB2Y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이를 도와주려고 샹그릴라 조종사 12명이 파견되었을때 문제가 발생하였다.

착륙하려고 애쓰던 PB2Y는 한명을 구하려다 세명을 물속에 빠뜨리고 날개가 물속에 잠겨 들어갔다.

연막을 치고 샹그릴라의 12 조종사는 약 반시간 동안 무사히 그 일대를 돌았으며 반은 다른 구조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머리위로 비행기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같더군." 적어도 40대가 오렌지색 폭탄을 보이며 1만2천피트 상공에서 퍼부었다. 갈색, 하늘색, 은색의 가지가지 비행기가 폭탄을 투하했다.

'우리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있었다' 고 O'Neill 은 말을 이었다. '적은 우리의 수가 많은줄 알고 우리가 겪어온 중 가장 우수한 조종사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한데 모여 기지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중의 4대가 급속히 아래로 떨어졌다. 6대가 전투중에 피격되었다. 모두들 다른 전우를 도우려고 노력하였으며 적어도 한명이 희생되었다.

Kennedy의 비행기는 기체 전체가 벌집투성이인데다가 기름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비행을 계속했다.

6월 4일이 되자 폭풍과 노도의 태풍이 시작되자 멕케인은 전 비행작전을 중지케 하고 열대지방으로 태풍을 피하도록 동쪽으로 방향전환했다. 태풍중심을 피하려고 속력을 가했다. 허가를 얻어 클라크는 그의 테스크그룹을 TF-38.4에서 독립적으로 따내어 단독으로 항해했다. 6월5일 아침 7시30분 태풍중심과 그 부근을 통과한 함정들은 가미카제 전부가 노력했던 것보다 더 많은 혹독한 피해를 입었다. 참으로 귀신같은 바람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구축함 피츠버그는 선수(船首) 100피트가 없어졌다. 구축함 Battlemnore와 Duluth과 Blue는 갑판이 굽었고 Hornet과 Bennington의 비행갑판 앞쪽 25 피트가 붕괴되었다. Pittsburgh, Duiuth와 Blue는 작전이 불가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태풍이 지나갔을때 멕케인은 작전을 재개시하였다. 6월8일과 9일에 그는「오끼 노다이도」와「미나미다이도」를 포격토록 휘하 구축함과 전함을 파견시켰으며 가장 우수한 장포사를 배치하였다.

이것이 오끼나와 전투의 마지막 일격이었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03-02 1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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