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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해전 (1)




영국 대함대와 독일 대양함대의 격돌

■ 해전의 배경

유틀란트 해전은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영국의 대함대(Grand Fleet)와 독일 대양함대(High Seas Fleet)가 총력을 투입하여 맞대결한 최대규모의 해상 격돌이었다.

이 격전은 1916년 5월 31일 오후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에 끝이 났다. 격전이 벌어진 해역이 덴마크의 유틀란트 반도 서쪽 해상이었으므로 유틀란트 해전이라 부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영국과 독일은 상호 치열한 해군력 건설 경쟁을 벌여 왔었다.

식민주의시대였던 당시 열강들이 식민지통치나 강압적인 군함외교 등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함거포(大艦巨砲)를 갖춘 해군력 증강은 곧 국가의 성쇠가 달려있는 일이기도 했다.

마한(Mahan)의 저서인「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에 심취한 독일의 빌헤름 2세는 스스로 독일 해군협회 총재가 되어 해군력 건설에 앞장을 서게 되며, 터피츠(Tirpitz) 제독을 해군상에 기용하여 해군력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하였다.

정치적 수완이 비상하고 행정역량이 뛰어난 터피츠는 어떤 강대국 함대와 경쟁하더라도 능히 당해낼 수 있는 강력한 독일 대양함대를 건설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반면 제해권의 확보가 생존의 문제인 영국은 제해권 유지를 위한 노력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0년전부터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의 도전을 받아 격렬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을 앞둔 10여년간의 영국 해군력 건설을 주도한 인물은 피셔(J. Fisher) 제독이었다.

그는 군함의 전투력을 혁신하는데 온갖 정성을 쏟아 이후 제1차 세계대전시 해전의 주력함이 된 노급전함(Dread nought)을 최초로 건조하게 했으며, 이전의 장갑순양함(CA)을 무력하게 만든 12인치 주포 8문에 속도 26노트인 전투순양함(CB : Battle Cruiser)을 출현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해군의 전략개념은 독일을 봉쇄하는 것으로써, 대 함대에 부여된 임무는 독일의 대양함대의 공격으로부터 영국 해안을 방어하고 또한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며 계속적인 대륙봉쇄로 압력을 가하여 독일의 항복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임무를 부여받은 영국 대 함대사령관젤리코(Sir John Jellicoa) 제독은 상반된 두가지 임무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즉, 독일 함대를 격파해야 한다는 것과 대 함대는 영국의 생존에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태보다 차후의 큰 사태에 대비하여 세력이 보존되어야한다는 문제였다.

따라서 젤리코 제독은 넬슨주의로 불리우는 전통적인 함대결전보다는 위험을 피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었다.

한편 영국의 대함대에 비해8 대 5로 열세한 독일의 대양함대는 이러한 세력으로 현존함대(現存艦隊)전략을 취하며 발트해와 북해에서 제해권을 유지하는 한편 잠수함을 이용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면서 지상전의 승리에 기대를 걸고 함대를 보존하여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유도하고자 하였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03-03 18: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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