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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MPAC 2004, 그 뜨거웠던 여름

◆ 설렘의 첫 출국

2004년 6월 20일 일요일 오후 8시, 인천 국제공항에서 하와이로 가는 항공기가 이륙했다.

항공기가 이륙하는 순간‘몇 달간의 훈련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림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는구나’하는 생각에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10시간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방향으로 올라오는 태풍 때문에 우려했던 날씨는 예상 외로 좋은 상태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첫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10시간의 여행 끝에 그 곳 시간으로 아침 10시 경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훈련 사전 준비를 위해 미리 가 있던 선발대가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모든 입국 수속을 마치고 앞으로 40일간 우리가 생활해야 할 카네오헤 기지로 출발했다.

공항에서 기지까지는 약 40분 정도가 걸렸는데, 그 때 본 하와이의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언젠가 미군과의 연합훈련이 끝나고 함께 한 회식자리에서 미 해군 장교가 하와이는 파라다이스(천국)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경치가 훌륭했다. 아름다운 하와이의 경치를 감상하며, 나의 훈련생활도 그러하리라는 기대를 잠시 가졌으나, 내가 하와이에 온 목적은 여행이 아닌 훈련 참가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림팩훈련 사전 준비 및 현지 적응

P-3C 해상초계기는 98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네 번째 림팩훈련에 참가했다.

훈련에 참가한 경험이 세 번이나 있어 훈련을 준비함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했지만 막상 훈련을 준비하려니 막막했다. 일단 가장 막막한 부분은 해외항법이었다.

종전 림팩 때 준비한 자료가 있긴 했지만 해외 항법을 해 본 경험이 없어 과거의 자료에만 의존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또한 국내에서도 여러 번 미군과 연합훈련을 해왔지만 림팩과 같은 대규모 연합훈련을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한 경험이 없어 연합훈련에 대한 준비도 해야 했다.

림팩훈련에 참가했던 선배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 방법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은 처음부터 하나씩 직접 짚어가는 방법밖에 없었고,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승무원들은 해외항법이나 연합훈련시 꼭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각자 연구하고 개개인이 연구한 것들에 대해 발표하여 다른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효율적으로 필요사항을 습득했다. 준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림팩 파견대원들이 각자 원래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며 림팩 준비를 병행해야 했기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P-3C가 출발 예정이었던 6월 21일에 태풍의 영향권에 들게 되어 다음날 출발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중간 기착지인 괌과 마지막 종착지인 하와이 기지와의 업무 협조 및 항로 수정으로 많은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림팩 준비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고, 나를 포함한 민항기로 이동하는 파견대원은 6월 20일에, P-3C로 이동하는 파견대원들은 6월 22일에 훈련 참가를 위해 한국을 떠났다.

민항기로 이동한 파견대원들이 시차에 적응해 갈 무렵 P-3C가 카네오헤 공항에 도착했고, 그 때부터 P-3C 림팩 파견대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6월 23일에 P-3C가 하와이에 도착했으나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은 7월 6일부터이기 때문에 약 12일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 동안 림팩 파견대는 연합 훈련에 대한 준비와 현지 적응을 해야 했다.

연합훈련 준비는 한국에서 개괄적으로 준비하던 것에 더하여 현지에서 받은 각종 전보 및 교범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 일과시간에는 사무실에서, 일과 후에는 숙소에 모여 훈련 관련 전보 및 교범을 돌려보며 함께 토론했다. 또한 한국에는 없는 모의 전술훈련장비인 WST를 통해 훈련전 미리 연합훈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미국인 교관이 훈련을 주도하여 전술 훈련을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을 통해 잘 알지 못하던 연합훈련 절차 및 통신 용어들을 익힐 수 있었다.

연합훈련에 관한 개인적인 준비의 일환으로 같은 일을 하는 동기와 함께 미군을 직접 찾아가 연합 훈련시 통신 절차 및 용어에 관해 물어서 정리하였다. 항공기에서 나의 일은 항공기의 항법 및 전술 통신을 담당하는 것인데, 한국에서 쓰는 절차 및 용어와 미군들이 쓰는 그것이 차이가 있어 확실히 확인해야 했다.

이렇게 확인한 사항을 승무원들에게 전파했으며, 동료 승무원들도 미군들에게 직접 확인한 사항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해 나갔다. 또한 한차례의 기지 숙달 훈련 비행을 통해 기지 접근 및 이 착륙절차, 전장 환경 등을 숙달했다.

이렇게 하나씩 착실히 준비해 나갔지만, 우리 기지가 아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기지에서 훈련준비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파견대는 최소 필요 인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원되던 것들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음식 문제는 훈련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 본격적인 림팩훈련

본격적인 림팩훈련은 7월 6일부터 시작되었다. 승무원들은 그동안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실제 훈련에 참가했다.

비행 승무원은 2개의 CREW로 나뉘어 거의 격일로 비행을 했다. 훈련 초반에는 한국에서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더 많았다. 여러 가지 사항이 지원이 되지 않는 관계로 직접 모든 일을 하다보니 비행 전 준비시간이 한국에서 3시간 대비 4시간으로 늘었던 데다, 6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까지 그것도 체력적 부담이 많은 새벽시간에 비행을 하려다 보니 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들도 비행이 계속 되면서 적응되었고, 훈련 초반에 긴장하며 했던 비행을 후반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비행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번 림팩의 최대 관심사인 공대함 하푼 미사일 실제발사훈련이 있었다. 나는 하푼을 발사하는 CREW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푼 발사 전까지의 긴장감과 명중을 바라는 마음은 하푼을 발사하러 나간 CREW들과 같았다.

지상에서 하푼 명중을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항공기와 교신을 하고 있던 전술지원소에서 하푼이 명중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그에 더해 을지문덕함에서 쏘아올린 미사일도 명중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기쁨은 배가 되었다.

하푼 실제발사 훈련를 마치고 돌아오는 P-3C를 보며 느낀 자부심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날, 림팩 파견대원들은 림팩 참가 이후 처음으로 약간의 술을 곁들인 식사를 기분좋게 할 수 있었다.

공대함 하푼미사일 명중이라는 거대한 성과 외에도 우리 항공기는 많은 크고 작은 성과를 내며 타국 군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7월 21일 야간비행을 마지막으로 모든 림팩 훈련이 끝났다. 마지막 비행에서 통신기를 통해“FINEX(훈련 끝)”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림팩훈련을 아무런 사고 없이 마쳤다는 것과 40일간의 파견생활을 마치고 이제 곧 귀국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느낀 기쁨이었을 것이다.

림팩 훈련 참가 승무원으로 결정되었을 때 부터 림팩훈련에 참가할 때까지 느꼈던 부담감을 생각하면 훈련 끝나고 느꼈던 기쁨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국내에서도 연합훈련의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일단 익숙한 우리 기지에서 이루어진다는 점과, 함께 훈련하는 세력이 우리 군과 미군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림팩훈련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군 기지에서, 미국 전장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과 함께 훈련하는 세력도 미군을 포함한 8개 국가라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훈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담감을 안고 림팩훈련에 참가하여 모든 훈련을 마치고 이제 귀국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어떤 성취감을 느꼈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훈련이 종료된 다음 날, 기지내 해변에서 MPA(해상초계기) 비치 파티가 있었다. 그동안 훈련에 참가했던 각국의 해상초계기 승무원 및 지원 요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훈련을 무사히 끝낸 것을 홀가분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사람들은 각국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곳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얘기하며 그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국적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나 문화도 모두 다르지만 그 곳에 모여 있던 기간만큼은 같은 마음으로 있었기 때문에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 자리는 훈련을 마치고 긴장을 푸는 자리였으며, 타국 군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 림팩훈련 마무리 및 복귀

훈련이 종료된 이후 약 일주일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 기간동안 훈련 내용 분석 및 결과 보고서 준비를 하였으며, 사용하던 시설들을 정리 및 반납하고, 복귀 준비를 했다.

하와이로 올 때 민항기로 이동한 나는 P-3C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훈련이 끝났어도 해외항법에 대한 부담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하와이로 올 때 해외항법을 했던 동기생으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지만, 첫 경험이라는 부담감은 떨칠 수 없었다.

드디어 한국으로 복귀하는 날, 민항기로 하루 늦게 이동하는 파견대원들과 현지 교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P-3C가 이륙했다. 여전히 항법에 대한 부담이 남아 있었지만, 긴 해외파견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항법은 준비한대로 차근차근 해 나갔고,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괌에 도착했다. 훈련 참가 시 태풍의 영향으로 일정 조정이 있었는데 복귀 시 다시 한번 영향을 받아 예정보다 하루 일찍 포항 복귀가 결정되었다. 괌에서부터 5시간 비행 후에 보였던 우리 땅 제주도와 통신기에서 들리는 우리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포항에 착륙 후 기지에서 가진 환영식을 끝으로 40여 일간의 림팩 P-3C 파견대 생활을 모두 마쳤다.


◆ 나의 자리

얼마 전 2004 아테네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기간 중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가질 때마다 주의 깊게 지켜보며 열띤 응원을 했다. 나도 그 경기장면들을 보면서 응원도 열심히 했지만, 선수들을 지켜보며 지금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선수들은 주어진 매 경기마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그저 최선을 다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림팩에 파견되었던 나를 포함한 파견대원들도 그 선수들의 마음가짐으로 맡은 바 임무에 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이번 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으며 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에 보람된 훈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훈련을 발전의 밑바탕으로 삼아 선수가 다음 경기를 준비하듯 다음의 내 임무를 준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림팩 훈련을 위해 힘썼던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11-04 18: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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