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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놀라게 한 잠수함 함장들

◆ 사쿠마 쯔도무(佐久間勉), 일본

일본은 일찍이 19세기 후반부터 잠수함 도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897년 워싱턴 주재 주미일본 해군무관 이데 대위는 존 홀랜드를 만났으며 1900년 4월 홀랜드급에 시승해 보기도 했다.

1904년 5월 일본은 개량된 홀랜드급 5척을 구매하여 1905년 10월 1일 도입하였고 일본 잠수함부대 역사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구매한 5척중 사쿠마 대위가 지휘하는 한 척은 1910년 4월 15일 히로시마 만에서 단독 항해훈련 중 실종되었다. 4월 17일 인양에 성공하여 함내에 진입한 구조요원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승조원 14명 중 정장을 포함한 12명은 모두 자신의 근무지를 이탈하지 않은 자세로 사망하였고 자리를 이탈한 유일한 두 명은 파공된 가솔린 파이프 복구 현장에 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체를 깨끗한 군복으로 갈아 입히던 중 사쿠마 대위의 군복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보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유래가 없는 대 유언서였다. 여기에 사쿠마 대위는 침몰의 원인, 침몰후의 경과, 잠수함부대 미래에 대한 걱정, 상관으로서 부하들에 대한 미안함, 선배들에게 보내는 고별인사 등을 공기오염으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기록해 놓았던 것이었다.

당시 31세였던 사쿠마 대위의 초인적인 행위는 일본 잠수함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사쿠마 대위는 일본 잠수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남아 있다.


◆ 오토 베디겐(Otto Weddigen), 독일

1882년 독일에서 출생한 오토 베디겐은 20세가 되던 해 1902년 해군에 입대했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유보트는 영국해상교통로 파괴를 위해 투입되었고, 1914년 9월 22일 오토 베디겐이 지휘하는 U-9함(승조원 20명)은 해군역사상 전무후무하게 1시간 만에 영국 순양함 3척(Aboukir, Hogue, Cressy)을 침몰시켰으며, 이로 인해 영국군 2,265명 중 1,800명이 사망하였다.

이것은 300년 동안 전 세계 대양을 지배해 온 대영함대의 치욕적인 사건이었으며, 당시 영국 해군참모총장이었던 피셔 제독(Admiral Lord Fisher)은“넬슨 제독이 그의 생애 동안 수행한 전투에서 희생시킨 병사보다 더 많은 병사를 잃어버렸다”며 한탄했다.

이후 10월 15일 베디겐 대위는 순양함‘호크(Hawke)’를 격침시켜 최초로 잠수함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대영함대를 스카파플로우에서 300마일 떨어진 북부 아일랜드의 로취유로 철수하도록 하는 수모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오토 베디겐 대위는 이후 U-29함 지휘권을 인수하여 1915년 3월 18일 영국근해에서 영국 전함 Dreadnought함과 교전 중 침몰하여 전 승조원 31명과 함께 사망하였다.

1차대전 패전으로 인해 독일 잠수함부대는 강제해산 되었으나 1935년 10월 1일 되니츠 대령을 지휘관으로 재창설되었으며, 이 부대명을‘베디겐 전단‘으로 명명하여 그의 업적을 기렸다.


◆ 귄터 프린 (GUENTER PRIEN), 독일

라이프찌히 태생의 프린대위는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16세 때부터 하급 선원 양성소를 마치고 소년 어부로 근무하다 1933년 해군에 입대하였으며 잠수함근무를 자원했다.

프린의 잠수함 학교 동기생 가운데는 2차 대전의 최고 잠수함 에이스인 오토 크레츠머와 이에 못지 않은 명성을 남긴 요하임 세프케가 있다. 이들 셋은 모두 친구 이면서 선의의 라이벌이었다. 1938년 12월 프린 대위는 U-47함 함장이 되었으며 곧이어 2차대전이 발발했다.

1939년 10월 14일 프린 대위의 U-47함은 영국 주력함대의 모항 스카파플로우에 침투, 대담무쌍한 수상 어뢰전 끝에 전함 로열오크호를 격침시켜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스카파플로우항은 영국의 군항이기도 했지만 1차대전 패전 후 79척의 독일 군함들이 무장을 해제 당한 채 7개월이나 억류되어 있다가 자침을 하고 만 독일인들의 恨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U-47함이 킬항에 입항할 때 부두에는 해군참모총장 뢰더 대장이 환영나왔으며, 함장 프린대위는 즉시 베를린으로 가서 꽃종이를 뿌리며 환호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환영을 받은 후 히틀러로부터 직접 기사철십자장을 수여 받았다.

스카파플로우 작전은 독일인들의 사기를 충천시켰고 잠수함의 진가를 전 세계에 인식시켰다.


◆ 오토 크레치머(OTTO KRETSCHMER), 독일

독일의 오토 크레치머는 2차대전뿐 아니라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과를 올린 잠수함 함장이다.

그는 1939년 2차대전 발발시부터 1941년 3월까지 불과 2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총 44척 266,269톤을 격침시켰다.

이러한 전과의 배경에는 그만의 과감한 전술구사가 있었다. 당시의 전술은 잠수함이 경계진 진행방향 함수에 위치하여 접근하던 표적을 공격하던 것이었지만 크레치머는 경계진 접근 시 잠항하여 주력체 근처까지 침투한 다음 부상하여 근접공격 후 다시 잠항하여 회피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한 척을 격침시키기 위해 3발의 직주어뢰를 사용하던 기존 방식의 사고에서 탈피하여‘Ein Torpedo-ein Schiff!(어뢰 한발 당 배한 척!)을 표어로 걸고 지휘하였다.

크래치머는 1912년 5월 1일 출생하여 1930년 독일 해군에 입대했으며 1936년부터 잠수함부대에서 근무했다. 1940년 4월 U-99의 함장으로 부임한 크래치머 대위는 1941년 3월 17일 영국 호송선단과의 교전 중 포로가 되어 영국과 캐나다의 전쟁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1947년 12월에 귀국하였다.

1953년부터 독일 해군 재창설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55년 독일군 재창설 후 해·육상 주요보직을 거쳤으며, 나토군 해군참모부장의 직책을 수행하다 1970년 9월 해군 준장으로 전역했다.


◆ 막스 홀튼(Max Kennedy Horton), 영국

막스 홀튼은 영국 해군의 영웅이자 위대한 잠수함요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1898년 해군에 입대한 그는 1차대전 발발시 800톤 급 잠수함인 E-9의 함장이었으며 1914년 독일 경순양함 헬라함 600야드까지 접근하여 어뢰 두 발로 격침시킴으로써 영국에서 적함을 격침시킨 최초의 잠수함 함장이 되었다.

그의 근접 공격전술은 성공을 거듭하여 독일 구축함 S-116함도 격침시켰으며, 31세에 훈장을 받고 중령으로 진급했다.

E-9함 지휘 시 발틱해의 스웨덴-독일 간 철강 해상 수송로를 차단하는 데 큰 활약을 하여 독일인들은 그 곳을‘홀튼해의 발틱’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1915년에 대형잠수함 J-6함의 함장이 되어 북해에서 작전하였으며 이어 M-1함의 초대 함장이 되었다.

1차대전 종료후 2차대전 개전 전까지 해·육상 지휘관 및 참모를 역임했으며 중장으로 진급하여 대기함대 사령관 직책을 수행하였고, 1940년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유보트의 위협으로 영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자 1942년 11월 윈스틴 처칠은 그가 서측 접근군(WESTERN APPORACHES) 사령관 임무를 수행해 줄 것을 개인적으로 요청하였다.

잠수함 전문가인 홀튼은 유보트의 강·약점을 간파하여 호송선단에 소형 경계진함을 배치하고 소형항모가 중심이 된 지원단대를 구성하였으며, 장거리 공격항공기를 활용한‘Hunter-Killer’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영국을 유보트 위협에서 구출하였다.

막스 홀튼 제독은 양차대전에서 그의 조국과 영국 해군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 모치수라 하시모토, 일본

모치수라 하시모토는 일본 잠수함 I-58함장으로 종전 직전 미순양함 인디아나폴리스함을 격침시켜 미국인들을 경악시켰다.

1909년 쿄토에서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유하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1927년 일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31년에 임관, 1934년부터 잠수함 근무를 시작하였다.

인디아나폴리스함 침몰에 대한 미국인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당시 함장 멕베이의 과실여부에 대한 최종재판이 침몰 후 55년 만인 2000년 10월 31일에 워싱턴에서 열린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될 원자폭탄 수송임무를 마치고 1945년 7월 30일 필리핀으로 가던 인디아나폴리스함은 일본 잠수함 I-58이 쏜 어뢰 6발중 2발을 맞아 12분 만에 침몰하였다. 1196명 승조원 중 약 300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약900명이 조난당했으나 5일간 해상에 표류하면서 탈수현상과 상어공격 등으로 인해 최종 생존자는 317명에 불과했다.

미 해군은 침몰에 대한 과실을 생존한 함장에게 돌려 법정공방으로 이어갔다.

2차대전에서 미국은 수백척의 함선을 잃었지만 침몰된 배의 함장이 과실문제로 법정에 서기는 맥베이가 유일했다.

사실 대잠위험구역에서 호송세력없이 단독항해를 지시한 미 해군의 지휘부에 문제가 있었지만 미 해군은 맥베이가 단독항해를 하면서도 적절한 전술적 기동 즉, 지그재그 항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맞섰다.

맥베이는 1968년 해군군법회의 기간 중 죄책감으로 인해 권총자살하였다. 생존자들은 고인의 무죄를 주장하였고 하시모토는 미 법정에 나가 당시 인디아나폴리스가 지그재그 기동을 했다할지라도 공격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맥베이의 무혐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맥베이는 무죄로 판결되었다. 하시모토는 2000년 10월 25일 91세로 도쿄에서 사망하였다.


◆ 완클린(Malcolm. D. Wanklyn), 영국

1911년 인도 캘커타에서 출생한 완클린 소령은 2차세계대전중 영국 잠수함의 영웅이다.

잠수함‘UPHOLDER'함을 지휘하여 1941년 1월부터 1942년 4월까지 16개월 동안 지중해에 전개하면서 총 24회 출동에서 22척의 적함을 격침시킴으로써 영국 잠수함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 주로 이태리 해군에 대응하여 구축함 2척, 잠수함 3척, 수송함 3척, 수송선 10척, 유조선 2척, 트롤선 1척 등 총 128,353톤을 격침시켰다.

2차세계대전 중 최초로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받은 반클린 소령은 1942년 4월 14일 그의 25회 출동에서 이태리 호송선단 공격 중 경계함의 폭뢰공격에 의해 그의 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였다.


◆ 오케인(Richard H. O'Kane), 미국

1911년 2월 2일 뉴헴프셔의 도버에서 태어난 오케인은 1934년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USS CHESTER함과 USS PRUITT함에 근무했다.

1938년 잠수함 교육을 받은 후 1942년까지 잠수함 USS ARGONAUT에서 근무하였으며 이후 USS WAHOO함의 부장으로 근무하였다. WAHOO함에서 몰톤 함장과 함께 혁혁한 공을 세운 오케인은 1943년 8월 USS TANG 함장으로 부임하여 1944년 1월 8일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 5차례 출동에서 총 31척 227,000톤을 격침시키고 2척에 손상을 입혔다.

이는 미 해군 잠수함역사상 최고의 전과이다. 1944년 9월 24일 다섯 번째 출동에서도 그는 13척의 적함을 격침시켰으며, 10월 25일 조우한 대규모 경계진과의 치열한 수상전 시 마지막 남은 어뢰 두 발을 수송선에 발사하였다. 첫번째 어뢰는 표적에 명중하였지만 두 번째 어뢰는 부메랑이 되어 TANG함으로 다시 돌아와 긴급 최대속력으로 회피시도에도 불구하고 함미부에 명중되고 말았다.

87명 승조원중 9명만 탈출에 성공하여 8시간 동안의 사투를 벌인 수영끝에 일본 구축함에 의해 구출되었다. 도쿄근처의 비밀감옥에 수감되어 기아와 고문, 노예같은 노동 속에서도 생존하여 종전 후 타 생존자 5명과 함께 귀환한 그는 트루만대통령으로부터‘명예의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1세기 가장 용감한 인물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이후에도 미 해군 잠수함학교와 제7잠수함전대를 지휘하는 등 해군에서 복무하다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그는 2차대전 경험담을 실은 책 2권을 저술하였으며, 1994년 83세로 사망하였다.


결 언

현상의 이면에는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죽는 순간까지 조국의 잠수함발전을 염려했던 사쿠마 정장의 위대한 유언을 적어보면서‘爲國獻身軍人本分’을 상기 해 본다. “소관의 부주의에 의해 폐하의 함을 침몰시키고, 부하를 죽게 한 것을 머리 조아려 사죄드립니다. 승조원 총원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각자의 자리를 지켰으며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한이 없지만, 혹시 우리의 실수가 앞으로의 잠수함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남은 여러분들이 잠수함의 연구발전에 전력을 다해 주십사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해 주신다면 우리 승조원 총원은 아무 유감이 없겠습니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5-01-21 16: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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