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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항 기뢰밭 속의 516함 (上)

9ㆍ28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원산교두보가 확보되자 괴뢰군은 북한해안수역에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하였다. 이 기뢰에 의해 미함정 부러쉬호, 맨스필드 호 및 매그파이 호 등 3척이 심한 파손을 입었다. 후에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소련인 30명이 10월 4일까지 원산에서 기뢰를 조립, 32척의 소형 선박으로 거의 야간에만 원산항구에 약 3,000개를 부설 했다는 것이다.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동해의 미 기동함대 사령관인 스타라블 제독과 그 참모들은 목적 지역에 앞서 갈 선두함대를 편성하여 가능한 한 단시일 내에 소해를 개시하기로 결심했다.

본 임무 수행을 위하여 기뢰제거가 가능한 모든 소해함은 집결되었다. 원산항 기뢰제거작전은 10척의 미 함정, 8척의 일제 소해선 그리고 1척의 한국 함정 등 총 21척의 함정 및 선박으로 구성되어 10월 10일에 시작되었다.

헬리콥터를 이용 항만 상공을 탐색하여 30패덤의 수로에 기뢰가 심하게 부설되어 있는 것을 파악하였다.

10월 12일까지 3일간에 걸쳐 24마일을 소해했으나 항구 내부까지는 아직도 10마일이 남아 있었다. 결국 공중폭격으로 기뢰를 폭발시키기로 하고 10월 12일 필리핀 호와 레이테 호 등 미 항공모함에서 39대의 비행기로 1,000파운드짜리 폭탄을 기뢰부설 수역에 투하했다. 파이릿드 호, 프레지 호 및 잉크레디블 호 등 3척의 미 소해함이 기뢰제거를 위해 폭발시킨 수역으로 들어갔다.

여도 북서방에서 파이릿드 호는 12시 9분에 기뢰에 접촉되어 침몰되었다. 6분 뒤에 프레지 호도 침몰했다. 세 번째 잉그레디블 호만이 안전하게 수로에 진입했으나 적 해안포의 사격을 받았다. 이렇듯 완전히 해안봉쇄 당한 상황에서도 아군 해상부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소해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적의 해안포는 우리 육군 1군단이 원산지역에 진격해 들어간 10월 17일까지도 크나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우군 함정들이 원산만에서 적의 기뢰장벽에 막혀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과감한 소해작전을 수행하여 군작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이 516함의 모험이었다.

516함은 원산항 소해작전이 시작되던 10월 10일경, 북진 항해 중에 해군본부로부터 전문으로 하달된 참모총장 명령을 하달받았다. 그것은“UN군이 원산에 상륙해야겠는데 현재 항만에 기뢰가 많아서 도저히 상륙을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516함이 원산부두까지 들어가는 안전항로를 개척하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전문을 접수하고 판단에 들어갔다. 아무리 원산항에 기뢰가 가득 차여서 있다고 할지라도 괴뢰군 자기네들이 사용하고 있던 수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즉 안전항로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516함장은 그 원산항만에 기뢰부설한 자를 색출해 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516함에서는 전 장병이 자발적으로 부식비를 절약하여 활동비를 마련, 사병 2명을 장전 부근에 상륙시켰다. 그들에게는“원산까지 가서 원산항과 영흥만에 기뢰부설한 자를 찾아내어 데리고 오라”는 임무를 부여하였다.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어업에 종사하지 않는 민간인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그는 북괴군이 후퇴 시 그들이 체포하려 했으므로 두려워서 간신히 피신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516함은 이제 원산항으로 들어갈 첫 단계의 준비는 갖춘 셈이었다. 마침내 516함은 작전명령대로 원산항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516함장 이하 전 장병은 원산항 최초 입항이란‘개척함’의 임무를 생명을 걸고 완수한다는 자부심으로 그 사기가 충천하였다.

함장은 찾아온 기뢰부설자를 부릿지에 세워놓고 명령했다.”당신은 우리 배의 안전을 위해서, 아니 대한민국 해군 함정의 안전을 위해 안전수로를 안내해 주시오. 만일에 안전치 못한 곳으로 인도한다면 함정과 우리는 물론, 당신도 죽을 것입니다.”

그 코스는 안전했다. 바로 좌측은 해안선에 바싹 끼고 끝까지 통하는 안전수로였다. 516함은 단독으로 해안선을 따라 서서히 항해를 했다. 기뢰부설 예상해역으로부터 원산항에 도착하기까지는 수시간 걸렸다. 그러나 516함으로서는 극도로 초조한 시간이었다.

왼쪽은 해안선, 오른쪽은 기뢰원, 이거리가 약 200m쯤 되는 수로를 기적적으로 항해를 수행했다. 때는 바로 낮이었다.(물론 야간 항행은 불가능하다) 516함에서는 육안으로 100m밖의 기뢰를 바라볼 수 있었다. 때마침 516함 오른쪽 기뢰원 상공에는 UN군 헬리콥터가 날고 있었다.

516함은 자신을 엄호해 주는 것으로 알았으나 기뢰를 향해 사격하는 것을 보고 기뢰제거의 한 방법이려니 하고 생각을 바꿨다. 바로 미 항모 필립핀 호와 레이테 호에서 소해를 위해서 비행해 온 헬리콥터였다. 곳곳에서 미 해군 함정들이 소해를 하고 있는 것이 516함에서는 볼 수 있었다.

516함도 항해해 가면서 마찬가지로 포사격으로 소해를 시도했다. 우선 함 안전을 생각하여 함의 전진과 반대방향인 후미와 우현 사이의 방향으로 기관포, 중기 등으로 많이 사격을 가했는데도 좀체로 기뢰가 터져 주질 않았다. UN군 헬리콥터나 미 해군 함정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516함의 시도는 너무도 무계획적인 것이었다. 물론, 당시 516함은 기뢰의 함상사격소해는 200야드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약 100야드 되는 곳에서 무원칙한 사격을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뢰가 폭파되면서 자함에까지 손상을 입히지 않을까 불안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이 방법이 효과를 거두어서 원산까지의 수로는 물론, 장차 UN군 함대가 상륙할 수로에 이르기까지 516함이 소해하게 되면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와 같은 성급하고도 무모한 시도를 한 셈이었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기뢰에 대한 학술을 습득한 장병들은 그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짓이었음을 알겠지만 그 당시만해도 그 이상은 생각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즉 명색이 소해함임에도 소해기구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소해작전 훈련을 해 본 일이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이 516함의 시도한 조치야 말로 우리 해군에 있어서는 고귀한 경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5-01-24 17: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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