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 걸음마 비행, 초등훈련

기본 비행절차(Procedure)를 익혀라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거나, ROTC, 조종장학생을 거쳐 공군 소위로 임관한 예비 조종사들. 드디어 학생조종사가 되어 초등, 중등, 고등비행훈련의 대장정에 임하게 된다.

초등훈련은 공군사관학교의 제212비행교육대대에서 이루어진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초등훈련에 입과한 그들 손에 가장 먼저 주어진 것은 비행절차(Procedure)가 가득한(그것도 영어로! ^^;;) 한 권의 책이다.

누가 굳이 얘기해 주지 않아도 그 볼품 없는 책 한 권을 깡그리 암기해야 함을 직감하게 된다. 누가 옆구리를 건드리기만 해도 술술 욀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초등비행 훈련기인 T-41의 시동을 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흠흠~ 대한민국 공군 소위에게 책 한 권 정도야... 모두들 잘도 외운다. 그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나간다.

T-41 앞으로.

출발은 깔끔하다. 하지만 웬걸, 처음 경험하는 속도와 3차원의 움직임에 2주 동안 힘겹게 외웠던 비행절차들이 힘차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후류 속으로 모두 날아가 버린다. 그들은 입만 벌린 채 엔진을 정지시키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그들은 비행하는 한 시간이 0.5초 간격으로 잘 짜여진 비행절차의 연속임을 언제쯤 알게 될까?


드디어 첫 비행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낙하산과 헬멧만을 들고 첫 비행에 임한다. 복장은 조종복이건만 역할은 아직 ‘짐짝’에 가깝다.

첫 비행은 누구에게나 혼란 그 자체다. 아무리 두뇌 회전이 빨랐던 이들이라 해도 동쪽의 반대가 서쪽임을 생각해 내는데 무려 5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됨을 알고 스스로 경악한다.

누가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물으면 그들은 아마 이렇게 답하리라.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 타면 재미있죠? 길어야 3～4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거 한 시간 타고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맛이 갑니다. 맛이...”

그들의 비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오늘은 비행, 내일은... 또 비행!

초등훈련은 4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길다. 정말 길다. 이렇게 길어도 되는 건지 싶도록 길다. 오늘도, 내일도 비행의 연속이다.

두 발로 땅을 밟고 살던 이들이 하늘을 나는 데 익숙해지려면 날고 또 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비행을 제대로 못한 학생조종사는 영락없이 낙하산을 메고 활주로를 뛴다. 무거운 헬멧을 눌러 쓰고 낙하산을 둘러 멘 모습은 영락없이 ‘닌자 거북이’.


아! 빨간 마후라...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단독비행(solo flight)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 꿈에도 바라던 단독비행을 무사히 마친 학생조종사들은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맛배기로 매어보는 의식을 치룬다. 담당 비행교수가 진심 어린 격려와 함께 빨간 마후라를 매 주면 아무리 강단 있는 사내라 해도 코끝이 찡해짐을 피할 수 없다. 그간의 고난이 주마등처럼 머리 위를 흐른다.


이제 중등훈련으로 직행

어느새 그 길던 넉 달이 지나버렸다.
드디어 초등훈련 수료식. 기쁨보다는 다짐을 주는 의식이다. 세 개의 큰 고개 중 가장 낮은 고개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며칠 동안의 꿀 같은 휴가를 즐기고 공군 제3훈련비행단으로 간다. 더 힘든 여정이 될 8개월 여의 중등훈련을 위해.

< 출처 : 공군=밀리터리 리뷰, 2003. 10. 29 >